많은 재즈 연주자들은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꿈꾼다. 원래 스트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치열하고 화려한 나머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연주를 보다 대중적으로 순화시키려는 제작자의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실제 클래식으로 대표되는 백인적인 색채가 가미됨으로써 재즈는 전과 다른 부드러움을 획득할 수 있었다. 찰리 파커, 클리포드 브라운의 앨범이 대표적이다. 한편 연주자 입장에서는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자신의 연주를 펼친다는 것은 사운드의 리더로서, 솔로 연주자로서의 역량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재즈 앨범들 대부분이 발라드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 흥미롭다. 대형 오케스트라를 상대로 연주하는 것이 연주자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발라드를 연주하는 것은 그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술적인 능력만 갖추면 가능한-물론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속주와 달리 발라드 연주는 연주자의 풍부한 감성과 경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저 천천히 연주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여백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하고 이를 통해 연주자의 이야기를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조슈아 레드맨의 이번 앨범이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한 발라드 앨범이라는 것은 참으로 시기 적절해 보인다. 아직 젊은 연주자로 보이지만 어느덧 그의 나이가 40대 중반이고 활동 경력 또한 20년이 넘었음을 생각하면 스트링 오케스트라와의 발라드 앨범 녹음은 다소 늦은 감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이번 앨범이 반갑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 그의 활동이 펑키한 오르간 트리오, 피아노 없는 진보적 트리오와 빅 밴드 연주에 치우치면서 편한 감상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번 앨범은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같다.
실제 앨범은 마냥 달콤하고 편하다. 그리 무겁지 않은 톤으로 조슈아 레드맨은 매 곡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속삭이고 감상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 연주자 스트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기에 그 온화함과 부드러움은 더 매혹적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멜로디를 곱게 이어나가는 연주를 펼치는 것은 아니다. 여백을 적절히 활용하는 한편 멜로디를 확장하는 수평적인 연주와 코드 진행에 기초한 수직적인 연주를 자유로이 조합하는 솔로로 재즈만의 긴장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빌리 스트레이혼, 제롬 컨과 오스카 해머스타인의 스탠더드 곡이 되었건 비틀즈, 존 메이어의 팝이 되었건 바흐의 클래식이 되었건 모든 곡들이 새롭게, 조슈아 레드맨의 자작곡과 동일한 정도의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그 결과 유사한 듯한 연주임에도 앨범 감상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한편 스트링 오케스트라와의 발라드 연주는 피아노 연주 외에 앨범 제작까지 책임진 브래드 멜다우의 힘이 컸다. 아마도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던 브래드 멜다우의 2010년도 앨범 <Highway Rider>에서의 모처럼만의 만남이 이 앨범에 영감을 주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떠나 80년대 한참 새로운 신예로 떠오를 무렵 함께 했던 조슈아 레드맨과 브래드 멜다우가 함께 했다는 것, 여기에 래리 그르나디에와 브라이언 블레이드가 가세해 쿼텟을 이루었다는 것도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를 배려해서인지 존 메이어의 ‘Stop This Train’과 비틀즈의 ‘Let It Be’를 연주할 때는 오케스트라를 배제한 쿼텟으로 연주해 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협연이 많은 연주자들의 꿈인 만큼 실제 협연을 담고 있는 앨범들이 자주 발매된다. 하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담아낸 앨범은 드물다. 오케스트라와 솔로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거나 깊은 맛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중에 이번 조슈아 레드맨의 앨범은 근래의 유사한 시도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며 오래 기억될 연주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