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nto – Barbara Casini with Enrico Rava (Label Bleu 2000)

bc바바라 카시니는 지금까지 3장 가량의 앨범을 냈지만 이 앨범 전까지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탈리아 재즈계를 대표한다는 엔리코 라바도 이 앨범 전에는 그녀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바라 카시니의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 테입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엔리코 라바는 여기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얼굴도 보지 않은 채 그녀와 함께 앨범을 제작할 것을 결심했다. 바바라 카시니의 어떤 면이 라바를 그렇게 반하게 했을까?

일반적으로 유럽에서의 재즈 보컬은 미국식 재즈처럼 하나의 독주악기에 맞먹는 힘있는 성량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 그것도 흑인 성향의 재즈 보컬을 따를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유럽만의, 그리고 백인만의 보컬 미학을 나름대로 완성시키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음악적인 배경이 다름도 들어가겠지만. 노마 윈스턴같은 보컬로 대표되는 유럽 재즈 보컬의 특징은 힘보다는 시적인 면에 있다. 스스로 가사를 만들고 이를 스스로 표현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가사는 단순히 노래를 위한 언어의 차원을 떠나 한편의 시처럼 음악으로 형상화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는 고유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보컬의 주관심사는 노래를 잘한다는 것보다 어떻게 가사의 이미지를 전개하느냐에 있다. 이런 결과로 때로는 그저 독백하는 듯한 창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 국악을 보면 가곡-서양식 음악에 한국어로 노래하는 그런 가곡이 아니라 순수한 우리만의-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들어보면 판소리처럼 힘을 줘가며 노래하기보다는 그저 술술 흐르는 듯한 느낌으로 노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런 면이 유럽 재즈보컬에서도 드러난다.

바바라 카시니 역시 유럽 재즈보컬의 흐름을 잇고 있다. 거의 모든 곡의 가사를 쓰고 절반가량을 작곡했다.끈적함이 하나도 없는 아주 맑은 그녀의 목소리는 가성 스캣으로 한 때 유명했던 다니엘 리카리를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미국식 재즈 보컬을 즐기는 애호가들에게는 좀 심심할 수 있겠다. 특별한 기교나 솔로도 없다. 그냥 노래를 할 뿐이다. 그래서 약간은 위축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바라 카시니의 보컬만큼이나 엔리코 라바의 트럼펫이 강하게 드러나고 이를 파올로 실베스트리의 오케스트레이션이 정말 바람(vento)처럼 앨범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바바라 카시니는 가사와 관련된 부분 이외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부분과의 음악적인 대화가 부족한 느낌을 준다. 앨범의 주인으로서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고 일부분으로 만족하고 있다. 아마도 엔리코 라바의 아우라를 극복할 만큼 자기의 색을 확립하지 못한 신인이 주는 한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이 앨범은바바라 카시니 외의 다른 부분에서 많은 재미를 느끼게 된다. 엔리코 라바의 트럼펫은 바바라 카시니처럼 노래하기도 하고 이미지를 그리기도 한다. 어쩌면 이 앨범의 주인이 라바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전체를 지배한다. 실제로 엔리코 라바는 몇몇 앨범에서 이태리 여성보컬을 참여시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레이션도 주의 깊게 들어보기를 권장한다. 길 에반스를 생각하게 하는, 클래식적인 어법과 재즈적인 어법을 잘 결합해서 반주의 차원을 벗어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보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앨범 전체가 주는 느낌에 더 충실한 감상을 한다면 훨씬 더 만족을 주는 앨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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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카시니는 지금까지 3장 가량의 앨범을 냈지만 이 앨범 전까지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탈리아 재즈계를 대표한다는 엔리코 라바도 이 앨범 전에는 그녀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바라 카시니의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 테입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엔리코 라바는 여기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얼굴도 보지 않은...Vrnto - Barbara Casini with Enrico Rava (Label Bleu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