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을 처음 접하게 되면 무척 난감함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앨범 전체를 통해서 정해진 멜로디나 음악적 구조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음악이 쾌감을 유발하는 멜로디가 있고 그 멜로디를 꾸미는 화음으로 이루어졌다는 일반적인 생각으로 이 앨범을 접한다면 이 앨범은 무척이나 난해하게 들릴 수 있다. 한 마디로 이 앨범을 정의한다면 열린 음악이라고 하고 싶다. 여기서 열렸다고 하는 의미는 모든 스타일을 받아 들인다는 개방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순간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감각으로서의 의미를 말한다. 각 곡에 대한 작곡자가 있지만 그 작곡이 모든 음들을 세심하게 정의한 완결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어디까지가 테마고 어디까지가 즉흥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앨범의 제목처럼 기보된 부분과 기보되지 않은 부분의 경계가 모호한 (un)written 음악인 것이다.
이런 음악은 기보된 음들 자체로서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악보에 기초한 연주에 의해서 곡이 완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그 결과로서의 음악도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시발점에 대해서 각 연주자가 자신의 상상력을 넣어 발전시키고 또 상대와 호흡을 해 나가는 음악적 행위다. 그래서 이 앨범은 매우 시각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특히나 이 앨범은 일종의 단절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음들을 이어 연주하는 레가토 주법에 상당부분을 의존하는 악기인 첼로가 포함되어 있어도 전체적인 음악은 연속보다는 단절의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단 두 개의 음이 연주된다고 하더라도 이 두 음들은 인과관계를 지니며 흐른다기 보다는 상관없는 두 음이 같은 선 상에 펼쳐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 전후와의 단절, 상관없음, 불협화음은 감상에 미묘한 긴장을 유발한다. 그것은 우리가 늘 하나의 구조를 늘 상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난잡한 구조라고 억지로 표현하지 말자. (un)written!
오히려 한 연주자가 시간의 흐름에 의존해서 진행하는 음들의 연속보다는 각 연주자가 발산하는 순간적 음들이 각 연주자에게 영향을 주면서 상호 교차되고 한 시점에 모이는 것에 더 많은 흥미가 간다. 같은 곳에서 시작했지만 곡의 진행은 각 연주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면서 동시에 서로가 음악적 동기를 유발함으로서 병렬적 위치에서 연주자간의 관계를 설립하려 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세 연주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유기적이라 할만큼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음이 아니라면 도대체 각 연주자들은 어떤 기초에 의거해 연주를 하고 있으며 서로 호흡을 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각 연주자가 신경쓰고 있는 부분은 음들보다는 소리의 미묘한 차이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음악적이기 보다는 음향적인 부분인데 이런 소리의 변화에 의거하는 연주 태도 또한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의미를 강화시킨다.
각 곡들이 달고 있는 제목을 보더라도 이런 열려진 상태로서의 음악을 반영한다. 소리의 변화에 의존하는 연주가 두드러지는 ‘A e I o u’처럼 의미없는 모음들로 이루어진 제목이나 흔적, 도주선, 일상적인 삶, 활짝 열려진 길, 색깔의 문제 등의 표제들이 그대로 음악을 표현한다.
이 앨범이 밥먹듯이 매일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담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세 연주자도 모든 사람들에게 이해받기를 원하면서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상상하고 연주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신호는 세계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 연주자와 주파수가 맞는 우리 중의 누군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주파수의 호응 문제에는 아무런 우열의 가치가 작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