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이 호기심을 끄는 것은 사실 음악 자체에 있지는 않다. 앨범 제목이 검은 테레민인 만큼 그 전에 아주 생경한 테레민(Theremin)이라는 오래된 악기, 기계가 우선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1920년대에 레프 테르만이라는 러시아인-이 이름은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레옹 테레민으로 소개되 세상에 알려져 악기 이름이 테레민으로 정해지게 되었다.-에 의해 발명된 이 테레민이라는 것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인지 나 역시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단지 앨범 속에 있는 사진과 소리로 미루어보아 하나의 기본 음원-어쿠스틱 악기의 실사음이 아닌-이 있고 그것을 인위적 주파수 변조를 통해 음의 피치를 조절하며 연주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사진 속 테레민은 검정색 상자에 몇 개의 조절 다이얼이 부착되어 있는 기계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방식은 지금 널리 쓰이는 신디사이저의 기본원리인 만큼 이제 와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계가 내는 소리의 특이함은 그냥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롭 슈윔머가 이 시대에 다시 지나간, 이제는 장난감같은 초기 전자 악기를 연주할 생각을 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테레민이 과거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많이 사용되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왜냐하면 클라라 록모어라는 테레민의 대가도 존재했었다니 말이다. (참고로 앨범의 ‘Watz For Clara’는 그녀의 사망 날 작곡되었다 한다.) 테레민이 만들어 내는 소리를 처음 듣고 대부분 감상자들은 톱으로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인간의 휘파람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나 역시 레가토로 죽죽 늘어지는 그 우울하고 (귀신이 나올 듯한) 비장한 음색에 톱으로 연주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색이 이러하다보니 앨범을 리드하는 악기임에도 음악적으로 본다면 멜로디적인 측면에서 전체를 이끌기 보다는 분위기적인 면에서 뒷받침하는 경향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그 분위기 역시 음악적인가 질문한다면 무반주 솔로 연주일 경우 의심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악기가 악기로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연주하는 유리 케인과 마크 펠드만의 힘이 크다. 이들이 연주하는 피아노, 바이올린과 색채적 대비를 이루면서 제대로 된 악기로서 인식을 하게 한다.
이 앨범에서 슈윔머는 오버더빙을 이용해 테레민 외에 워터폰(Waterphone)이나 닥소폰(Daxophone)같은 낯선 악기를 사용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장난감들을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처음 몇 차례 감상시 이들 악기가 도대체 어떤 음색으로 어느 부분에서 불쑥 튀어나오는가에 신경을 쓰느라 음악적으로 감상하는데 애를 먹었다. 사실 현대는 악기의 특이성만으로는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시대다. 있어도 그것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신기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필터의 예술, 테크노 음악이 그러하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악기가 특이할수록 왜 연주에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정당한 합목적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앨범의 각 곡들은 곡 자체가 테레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걸맞은 악상을 보여주기에 테레민의 사용이 단지 특이함을 위해서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한다. 1900년대 초반의 퇴색된 흑백 영화의 분위기-곡들 중 다수가 영화 음악가 버나드 허먼의 곡임을 주목하자.-, 인상주의, 그리고 약간의 현대음악적인 뉘앙스가 풍만한 곡들이 연주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만족스러운 부분은 슈윔머가 연주하는 테레민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그것은 음악적으로는 전반에 나서지 못한다. 테레민을 부수적인 효과로 차지해 놓았을 때 드러나는 유리 케인과 마크 펠드만의 연주에 주목하기 바란다. 매우 정제된 언어로 깔끔하게 곡 속의 내러티브를 펼쳐 나가는데 그 모습이 재즈(의 색채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곡들이지만)를 넘어서 하나의 실내악 연주를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마크 펠드만의 연주는 재즈적인 면과 클래식적인 면이 잘 버무려진 연주를 펼친다.
끝으로 November만의 특이한 앨범 패키지를 언급하고 싶다. 내구성에서는 좀 의심을 받을 수 있지만 새로운 차원의 앨범 자켓은 또 다른 음악적 상상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