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의외의 방향으로 튀어 버리는 유리 케인이 이번에는 소위 필리 사운드라고 하는 필라델피아 특유의 음악을 가지고 등장했다. 필리 사운드는 사실 하나의 정의로 묶기는 어려운 것이다. 멀리는 사이키델릭 사운드에서 시작해 가까이로는 펑크, 소울 등의 음악을 아우른다. 바로 그런 필리 사운드가 이 앨범의 근간을 이루는 기둥이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화두로 삼았을까? 기존의 유리 케인의 작업과 관련을 지어 생각한다면 클래식의 재 편집 작업처럼 이번에 케인의 관심은 가장 대중적인 부분을 건드리려 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유행하는 일렉트로 재즈에 대한 케인의 화답일 수도 있다. 이미 그의 클래식 작업에서 일렉트로 재즈와는 다른 방법이지만 다양한 일렉트로닉스의 창조적 사용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기존의 흐름을 무작정 수용하기엔 유리 케인 스스로가 꺼림칙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뉴욕의 틴 팬 앨리 시대를 복원했던 사실(<The Sidewalks Of New York>(Winter & Winter 1999))에 비추어 볼 때 이번에는 필라델피아라는 한 공간을 음악을 통해 복원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쩌면 최우선의 이유일지도 모르는) 필라델피아가 케인이 유년기를 보낸 도시였다는 것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아무튼 케인으로서는 매우 새로운 스타일이다.
한편 앨범을 이끄는 트리오가 Philadelphia Experiment라는 앨범과 동명의 팀명을 쓰는 만큼 유리 케인의 입장에서만 앨범을 감상해서는 곤란하다. 실제 이 앨범을 보면 워낙 이전 유리 케인의 스타일과 달라서 그런지 유리 케인의 리드가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챤 맥브라이드와 아미르 톰슨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특히 아미르 톰슨의 힙합과 소울을 섞어놓은 그루브 넘치는 드럼 연주가 이 앨범의 색을 결정하고 있는 중요한 축으로 등장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여기에 크리스챤 맥브라이드의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도 비교적 온건 정통파의 길을 걸어왔던 그의 음악 이력에 비추어 볼 때 아주 의외로 다가온다. 사실 이런 상이한 경향의 세 연주자가 모인 의외성이 연출된 이유는 세 연주자가 동향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은 설명된다.
앨범의 기조를 펑크한 분위기가 이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앨범을 단순히 70년대 필리 사운드의 재현으로만 보아서는 안될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대로 하나의 음악 스타일 자체의 재현이 아니라 필라델피아라는 한 공간의 복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곡을 보면 아주 놀랍기까지 하다. 선 라의 곡(Call For All Demons)에서 시작해 마빈 게이(Trouble Man Theme), 엘튼 존(Philadelphia Freedom),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Mr Magic)같은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이 연주되고 있다. 이런 곡들을 연주함에 있어 단순히 이들은 하나의 스타일에 의존하지 않는다. 원 곡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세 연주자 개인이 표현하고 싶은 그대로 연주를 펼쳐 나간다. 그래서 어떤 곡은 유리 케인 특유의 진보적인 향기가 가득 배어있기도 하고 어떤 곡은 크리스챤 맥브라이드 혼자만의 생각이 드러나기도 한다. 즉, 필리 소울이, 필라델피아 사운드가 이러했다고 설명하기 보다는 그 필리 사운드가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어떻게 현재의 입장에서 발화되고 있는가를 솔직히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사운드를 보충하기 위해 참여한 동향 연주자들의 조력도 무시 못한다. 특히 팻 마티노의 기타는 필리 사운드적인 맛을 내는데 큰 일조를 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싶다.
이 앨범은 끝까지 들어야 재미가 더하다. 유리 케인의 피아노와 래리 골드의 첼로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 버린 엘튼 존의 곡 ‘Philadelphia Freedom’의 충격에 이어 오히려 원 곡의 그루브한 면을 케인의 피아노 솔로로 정제시킨 ‘Mr Magic’이 마지막 곡으로 정해졌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니 말이다. ‘Mr Magic’이 정해진 시간보다 의외로 일찍 끝나는데 이 때 조용히 기다리기 바란다. 그러면 크리스챤 맥브라이드가 더빙을 통해 혼자 연주하는 ‘Just The Two Of Us’가 나오니 말이다. 아주 맛깔스럽고 재미있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