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ris Concert Edition 1 & 2 – Bill Evans Trio (Elektra 1979)

be빌 에반스는 타인의 평가와 상관없이 재능보다는 노력에 의지하려 했다. 이 앨범에서도 짧은 글을 통하여 노력에 의한 일종의 진화론을 주장했다. 실제 그가 천재였건 아니건 빌 에반스는 갈수록 진보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자신의 생각을 입증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그의 피아니즘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무렵 빌 에반스의 연주는 갈수록 내면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앨범 역시 그의 피아노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가 만들어 낸 음악적 스타일 자체로 다른 연주자와 구별되는 스타일리스트 대접을 받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피아노에 완전히 전이시키고 이를 청취자가 느낄 수 있게 했다는 것이 더 매력적이다. 빌 에반스만큼 연주에 자신의 성격을 드러낸 연주자는 없을 것이다.

빌 에반스가 이 앨범에서 들려주고 있는 연주는 잠깐 실수를 하면 깨질 것처럼 위태롭게 들린다. 이런 섬세함과 가냘픔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오래 전에 언급했던 크리스탈 같은 소리에 연결된다. 그 깨질 것같이 맑은 피아노 소리를 기반으로 빌 에반스가 펼쳐내는 이야기는 서정과 낭만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런 낭만과 서정이 너무나 개인적이기에 앨범에 담긴 발라드 곡들은 단순한 편안한 분위기의 차원을 벗어난다. 그래서 차칫 혼자 들으면 편암함만큼 우울이 찾아 올지도 모른다. ‘Quiet Now’같은 곡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보라!

빌 에반스의 피아노 테크닉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불필요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빌 에반스는 재즈 피아노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 위해 자신의 테크닉을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기본적인 목표는 자신이 내성적 성격으로 인해 차마 말로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피아노로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앨범에도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다. 바로 다른 두 연주자와의 호흡 문제이다. 완성단계에 들어간 빌 에반스의 피아니즘이 지닌 카리스마 때문일까? 아니면 빌의 피아노에 담긴 내용이 너무 개인적이기 때문일까? 마크 존슨의 베이스나 (특히) 조 라바르베라의 드럼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약하다. 빌 에반스의 솔로 앨범이라 해도 좋을 만큼 피아노에 완전히 눌려있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이 앨범이 녹음되었던 1979년의 마크 존슨이 아직 신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소리를 내기가 힘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 라바르베라 역시 빌 에반스가 구사하는 침묵을 깨기가 힘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빌 에반스 트리오가 역사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에 비하면 조금은 아쉽다.

여기에 LP는 어땟을 지 모르나 CD 전체에 편재하는 잡음도 아쉬움을 준다. 테입에 녹음되었던 것을 CD화했지만 같은 방법으로 제작된 당대의 다른 앨범에 비해서 그 정도가 심하다. 비록 잠시 두면 그 균질감으로 무시할 수 있지만 빌 에반스의 피아노가 피아니시모를 연주할 때는 다시 그 히스 노이즈가 들린다. 다시 마스터링을 한다면 이 잡음을 없애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빌 에반스가 디지털 시대에 생존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불행히 그는 디지털 시대의 시작과 함께 명을 달리했다.

이런 아쉬움에도 이 앨범이 빌 에반스의 명작으로 소장 권장 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던 그의 삶에서 드러나는 비극적인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것보다도 인간적이고 내면적인 앨범이 바로 이 파리 콘서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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