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헤이든이 지금까지 해온 활동을 고려한다면 분명 그는 재즈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대략적으로 그의 음악 여정을 살펴보면 오넷 콜맨, 돈 체리, 에드 블랙웰과의 프리 재즈 연주, 정치적인 담론을 담고 있었던 Liberation Orchestra의 설립을 거쳐 키스 자렛, 팻 메스니 등과 현대 재즈의 흐름을 주도 해왔고 근래에 들어서는 쿼텟 웨스트를 통해서 낭만적이고 과거 지향적인 분위기의 연주를 해왔다. 이런 다양한 활동은 그가 한 사조에 머무르지도 않았고 늘 자신의 음악적 본능에 충실하게 변화를 해왔음을 입증한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극에서 극으로의 이동이었다고 할 수 있는 여정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찰리 헤이든의 음악 활동이 갖는 중요성을 인정한 몬트리얼 재즈 페스티벌 측은 1989년의 프로그램 전 8일을 그에게 헌정했다. 그래서 찰리 헤이든은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모든 음악적인 활동을 다양한 구성으로 마음껏 선보일 수 있었다. 그동안 헤이든은 폴 블레이부터 제리 알렌-이 페스티벌의 다른 날에 참여하기도 했다.-까지 다양한 피아니스트와 활동을 해왔다. 그 중 곤잘로 루발카바는 그가 발굴해 세계에 알린 쿠바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이다. 그와 폴 모시앙과 함께 트리오를 구성해서 몬트리올 페스티벌의 4일째 무대에 헤이든은 올랐다.
보통 베이스라는 악기는 전면에 나서기 힘들다. 그러나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연주의 한 가운데 위치하는 악기이기도 하다. 이런 악기의 특성 때문인지 찰리 헤이든의 활동은 연주자보다는 작곡가, 리더로서의 역할이 더 강하게 부각되어 왔다. 그런데 이 페스티벌에서는 그의 리더로서의 찰리 헤이든 뿐 아니라 연주자로서의 찰리 헤이든을 들을 수 있다.
앨범의 연주 스타일은 기존의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양식을 그대로 따른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연주가 이루어지면서 한편으로는 찰리 헤이든의 솔로가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간혹 가다가 조용하던 폴 모시앙의 솔로가 나온다. 이런 전형적인 피아노 트리오 연주임에도 다른 부분이 느껴진다. 그것은 모든 연주가 멜로딕한 면을 지니고 있음에 기인한다. 찰리 헤이든이 만들어가는 솔로는 리듬보다는 멜로디적인 면이 더 드러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곤잘로 루발카바의 피아노 연주는 전 곡에서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있다. 처음에 난 그를 테크닉을 앞세운 연주자로 생각을 하고 좀 꺼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실제 그는 리듬감각 외에도 멜로디를 즉석에서 만들어 나가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이 능력이 이 앨범에서 잘 드러난다.
한편으로 이 날 연주된 곡들도 특징적이다. 총 6곡이 연주되었는데 그 중 찰리 헤이든의 곡이 3곡이고 오넷 콜맨, 마일스 데이비스, 게리 피콕의 곡이 각 한 곡씩 연주되었다. 보통 오넷 콜맨은 약간은 난해하게 비치는 프리 재즈 연주를 해왔음에도 멜로디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어왔는데 이 앨범에서 세 연주자가 펼쳐내는 ‘The Blessing’을 들으면 이 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찰리 헤이든이 선호하는 곡 중의 하나인 ‘Silence’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이 날의 연주에서도 깊은 슬픔으로 다가온다. 서서히 솟아 올랐다가 거품처럼 사라지는 존재의 침묵을 단순히 반복되는 멜로디로 노래하는 듯한 이 곡은 찰리 헤이든의 곡 중에서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곡은 공연의 한 가운데서 14분가량 펼쳐지는 ‘La Pasionaria’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곡이 진짜 찰리 헤이든의 곡인지 의문이 가지만 -내 기억에는 스페인 전통곡이었다.-아무튼 이 곡에서 세 명의 연주자는 감각적이고 색채 가득한 연주를 하고 있다. 세 연주자의 호흡도 호흡이고 그림처럼 진행하는 솔로가 수록곡 중 가장 인상적이다.
1989년의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의 전 공연은 각각 음반화되었다. 아마도 언젠가는 전집 형태로 발매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중, 이 앨범은 다른 날의 공연보다 우선적으로 들어보아야 할 연주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