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정보 없이 앨범을 들으면 데이빗 팻헤드 뉴먼이나 스탠리 터렌타인처럼 하드 밥을 최고의 재즈 언어로 삼아 평생을 연주했던 연주자들이 연상될 것이다. ‘The Good Life’를 시작으로 잘 알려진 스탠더드 곡들을 연주하면서 보여주는 느린 템포에서의 끈적함, 빠른 템포에서의 여유를 보면 정말 나이 지긋한 노장이 그려진다.
하지만 이 앨범의 주인공 크리스티나 폰 뷜로우는 노장 미국 연주자가 아니라 덴마크 출신의 여성 색소폰 연주자이다. 1990년대부터 모국을 중심으로 꾸준한 활동을 해 온 그녀는 스탄 겟츠와 리 코니츠를 멘토로 삼아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앨범에 담긴 그녀의 음악에서는 유럽, 특히 스칸디나비아에서 흔한 클래식과 포크를 바탕으로 한 재즈가 아닌 달리 전통적인 비밥 양식에 애착이 강하게 느껴진다. 비밥 양식을 바탕으로 그 안에서 자유를 찾는 연주.
사실 여성 연주자의 호방한 연주라는 것을 제외하면 앨범에 담긴 그녀의 연주는 무척 진부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시대의 흘러간 스타일을 연상시키다니! 하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자유로이 그리고 여유 있게 곡을 확장하는 부분은 그 진부함 속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만으로 재즈의 흥겨운 긴장을 맛볼 수 있었던 담백한 재즈 시대를 그리게 한다. 이 정도 매력이라면 한 장의 앨범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의 최대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