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를 지배했던 재즈는 어떤 것이었을까? 재즈의 역사를 뉴 올리언즈-스윙-비밥-쿨 재즈-하드 밥-프리 재즈-퓨전 재즈가 순차적으로 펼쳐졌다고 수학 공식처럼 이해하는 사람들은 주저 없이 프리 재즈였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꼭 그렇지 않았다. 위에 언급한 대로 재즈의 스타일이 바뀐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 역사가 한 시대를 완전히 끝내고 다른 시대가 새로이 시작되는 방식으로 흐른 것은 아니었다. 기존 스타일에 새로이 등장한 스타일이 재즈의 지형도를 새로이 그리며 공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1960년대에는 스윙, 쿨 재즈, 하드 밥, 소울 재즈, 라틴 재즈, 프리 재즈 등이 지분의 차이는 있지만 공존했다. 게다가 재즈 연주자들은 특정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고 그 사이를 자유로이 오갔다.
드럼 연주자 치코 프리맨도 그랬다. 1920년생인 그는 리오넬 햄튼, 레나 혼 등과의 활동을 거쳐 색소폰 연주자 게리 멀리건의 피아노 없는 쿼텟에 참여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래서일까? 솔로로 독립하여 1955년부터 10년 가량을 이끌었던 퀸텟도 피아노를 두지 않았다. 대신 기타가 있었고 여기에 첼로나 트롬본이 가세한 모습을 보였다. 연주자와 편성의 변화가 종종 있었지만 그는 이 퀸텟으로 기본적으로는 웨스트 코스트의 정돈된 스타일을 따르는 재즈, 실내악적인 울림을 지닌 재즈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퀸텟의 마지막 기타 연주자였던 가보르 스자보가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면서 해체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치코 해밀턴은 웨스트 코스트 재즈 연주자로 분류되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성향은 꼭 그렇지 않았다. 그는 색소폰 연주자 에릭 돌피의 뒤에서 아방가르드 재즈를 함께 연주하기도 했으며 하드 밥 연주자들과도 종종 어울리는 등 전방위적인 활동을 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성향의 재즈가 공존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도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퀸텟을 해체 한 이듬 해인 1966년에 발매된 앨범 <The Dealer>는 소울 재즈의 양식과 아방가르드적인 정신이 평화로이 공존하는 사운드를 통해 시대와 호흡하며 다양한 활동을 했던 그를 생각하게 한다. 예를 들면 당시 비틀즈의 음악과 함께 많은 청춘을 사로잡은 모드 문화를 반영한‘For Mods Only’는 리 모건의 ‘The Sidewinder’로 대표되는 흥겨운 소울 재즈를 연상시킨다. 느린 템포의‘Baby You Know’는 블루스에 기반한 전통적인 발라드 양식을 그대로 따른다. 반면 보컬 허밍까지 들어간‘Thought’은 명상적인 분위기로 아방가르드의 엄숙함을 반영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앨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The Dealer’와 ‘Jim-Jeannie’는 부단한 리듬, 이를 배경으로 이어지는 각 악기들의 솔로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중반의 복잡한 시대 정신을 느끼게 해준다. 이것은 스테레오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종종 시도되었던 좌우로 극명하게 분리된 믹싱, 그러니까 리듬 섹션을 악기 별로 좌우 채널 한쪽에만 배정한 믹싱도 일정부분 역할을 한다.
한편 아트 블래키, 맥스 로치, 로이 헤인즈, 폴 모시앙 등의 드럼 연주자들처럼 치코 해밀튼 또한 젊고 재능 있는 연주자들을 발굴하는 데에도 큰 능력을 발휘하곤 했다. 그 가운데 이 앨범에서는 기타 연주자 래리 코리엘을 발굴하여 선보였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이 기타 연주자는 웨스 몽고메리, 그랜트 그린 등의 선배가 이룩한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록적인 질감을 받아들인 연주로 아니 로렌스의 색소폰과 함께 전면에서 화려하고 세련된 연주를 선보였다. ‘A Trip’과 래리 코리엘 본인이 작곡한‘Larry Of Arabia’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이런 뛰어난 연주가 있었기에 1년 후 게리 버튼 그룹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래리 코리엘 외에 게스트로 참여한 두 명의 건반 연주자도 주목할만하다. 먼저 ‘Baby You Know’와 ‘Larry Of Arabia’에 오르간 연주자 어니 헤이스가 참여했다. 사실 이들 곡에서 오르간은 전체를 주도하지는 않는다. 그저 오르간 트리오가 지배했던 소울 재즈의 과거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그러나 실로 오랜만에 건반 연주자와 함께 연주 했기에 당시로서는 무척 신선할 수 있었다.
이 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For Mods Only’다. 소울 재즈의 전형을 느끼게 하는 이 곡은 아방가르드 색소폰 연주자 아치 쉡이 작곡했다. 불꽃 같은 뜨거운 연주가 매력인 색소폰 연주자가 가볍고 경쾌한 소울 재즈를 작곡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게다가 직접 색소폰이 아닌 피아노로 연주에 참여하여 경쾌하게 리듬을 연주한 것은 무척이나 색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새로운 신인과 색다른 모험을 즐기는 연주자, 스타일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지닌 리더가 어우러졌기에 1950년대의 하드 밥은 물론 그 이후에 유행한 소울 재즈와도 차별된 재즈, 하나의 스타일로 묶을 수 없는 재즈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1970년 <Bitches Brew>로 퓨전 재즈의 출발을 알리기 전에 이미 의미 그대로의 퓨전 재즈를 선보였다고 하면 정확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