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에반스의 앨범들 중에 가장 사랑받고 있는 앨범을 꼽으라면 <Waltz For Debby>와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로 나뉘어 발매되었던 이 초기 빌리지 뱅가드 세션을 꼽게 된다. 음반의 수명이 지금에 비해 짧았던 LP 시대에는 여러 번 새 앨범을 구입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인 일종의 무인도 앨범에 해당하는 앨범이다.
이 앨범들이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제시되고 있는 트리오의 연주가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새로웠다는 것이다. 빌 에반스가 리더로서 솔로를 펼쳐 나가는 방법이 새로웠음은 물론이고 뒤를 따르는 베이스와 드럼은 기존의 스타일과는 다른 것이었다. 밥의 혁명 이후 베이스와 드럼의 솔로가 자유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이 두 악기는 피아노가 솔로를 펼칠 때는 거의 기계처럼 박자세기만을 하는 것이 일반 적이었다. 게다가 자기 솔로 순서가 오면 베이스는 약간의 스윙감이 가미되었으나 기본은 코드음을 박자에 맞추어 연주하는 것이었고 드럼은 잠깐의 애드립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앨범에 담긴 트리오는 이에 비해 무척이나 자유스럽다. 게다가 순차적으로 솔로를 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 연주자가 동시에 자율성을 유지하며 솔로를 펼쳐 나간다. 빌 에반스의 발라드 연주 뒤로 흐르는 스코트 라파로의 베이스는 단지 코드의 기본음을 짚는 것도 아니요 발라드를 조용히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탄력을 유지하면서 피아노 주위를 맴도는 솔로를 펼친다. 여기에 폴 모시앙의 드럼은 심벌의 다양한 사용을 통해 박자세기의 기능이 아니라 음악에 색을 입히는 팔레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오랫동안 떠나지 않을 폴 모시앙의 스타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형식적인면 외에 앨범에 담긴 빌 에반스의 개인적인 면때문이다. 사실 빌 에반스가 현대 재즈 피아노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지금의 피아노 즉흥 연주의 기본을 이루는 대부분의 것들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연주 스타일이 이제는 일반화되었음에도 빌 에반스만의 개인적인 사운드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비교적 초기 활동을 기록하고 있는 이 앨범들에서도 빌 에반스의 색은 쉽게 발견된다. 지금 다시 들어도 어떻게 당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하는 감탄이 생긴다. 연주에 담긴 빌 에반스의 색은 무엇보다 빌 에반스의 성격이다. 조금은 내성적이기도 하면서 서정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유명한 ‘Waltz For Debby’에 내재된 따스함을 보라. 조카를 사랑하는 빌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런 감정적인 부분은 당시까지 재즈 발라드가 지니고 있었던 분위기와는 다른 빌 에반스만의 것이었다. 이처럼 한 개인의 성격을 담고 있기에 그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자기만의 색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공연 후 스코트 라파로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트리오가 9개월만에 끝이 났다는 것이 이 앨범을 전설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