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앨범은 2008년 11월 26일 파리의 살 플레옐에서의 공연과 닷새 뒤인 12월 1일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의 공연을 담고 있다. 그런데 앨범 타이틀이 ‘유언’이다. 마침 9월 11일이 내 할머니의 기일이라서 더욱 더 이 타이틀이 마음에 걸렸다. 영원한 현재를 사는 듯한 그 역시 (연주자로서의)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안타까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두 공연을 할 당시 그의 곁을 늘 지켜주던 아내 로즈 안 자렛이 그를 떠난 상태였기에 그에게는 이 공연이 일종의 사투와도 같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런던 공연을 하고 나서 팔에 찜질을 해야 했을 정도라 한다. 그렇기에 제작자의 이름에 키스 자렛이 적혀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음악에서는 전혀 삶의 마지막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특유의 현전감(現前感)을 강하게 드러내는 연주를 펼친다. 그리고 긴장할 땐 최대한 긴장하게 만들고 또 그로 인해서 아름다운 멜로디를 더욱 아름답게 느끼게 하는 연출력에서도 최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지난 <Radiance>나 <Carnegie Hall Concert> 앨범에 비해 각 파트별로 독립적인 느낌, 명쾌한 주제감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제 그가 새로운 연주 방식에 잘 적응했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과거 시속 160킬로미터로 마구 달리는 듯하던 모습에서 천천히 주변 풍경을 음미하고 또 적절히 쉬어가는 연주로 완벽히 이동했다고 할까?
그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진 몰라도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그저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의 연주를 펼치는 것만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일단 피아노 앞에 앉으면 그는 현실을 떠나 음악 속에 존재하고 음악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Testament’란 타이틀은 마지막 연주인양 열심히 연주하는 그의 자세의 확인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수십 년 전부터 그의 유언을 듣고 있는 셈이다.
아! 어쩌면 사람들은 이 연주의 전체적인 완성도 이전에 귀를 머무르게 만드는 발라드 연주 곡이 얼마나 있는지에 더 관심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답을 하면 충분히 있다! 그러나 꼭 한번이라도 전체를 쉬지 않고 들어보기 바란다. 키스 자렛이 연주했던 그 상황을 상상하며 말이다. 그러면 보다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