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과거를 부정하며 살 수 없다. 오늘의 정체성은 과거가 결정한다. 그런데 현 국내 대중 음악을 보면 과거를 잃어버린 듯하다. 적어도 80년대와는 커다란 단절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들국화의 주찬권, 신촌 블루스의 엄인호,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은 아주 오래 전의 신화 같은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신화가 현실에 나타났다. 세 사람이 수퍼 세션이란 이름으로 뭉친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만큼 훌륭한 작곡이 기반이 된 세 사람의 음악은 먼지를 머금고 있던 80년대의 진중한 감성을 멋지게 재현해 내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80년대를 기억하는 감상자가 주찬권, 최이철, 엄인호의 노래와 연주를 듣는다면 짙은 향수를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이들의 음악이 마냥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세 사람은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누어온 사이라고는 하지만 록, 블루스, 펑키 등 음악적으로는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각자의 개성을 하나의 앨범에 집약시키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실제 앨범에는 블루스적인 느낌이 강한 세 사람의 공동 연주 외에 각각의 개성을 강조하려 한 곡들도 눈에 띈다. 그런데 이러한 제약이 오히려 과거를 담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사운드를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즉, 세 연주자들과 젊음을 함께 한 감상자들이 과거를 추억하는 한편 새로운 추억을 만들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아! 앨범이 주는 아쉬움도 있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가 감상을 때론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