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역사를 살펴보면 그 자체로는 하나의 작은 사건이었지만 보다 거시적으로 보면 재즈사를 풍성하게 만든 분절점이었던 사건들이 종종 발견된다. 이런 사건들을 우리는 전설이라 부른다.
재즈사가 중요 문턱을 넘을 때마다 리더 역할을 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경우 다른 누구보다 주요한 전설적 사건을 많이 남겼다. 그 중 마라톤 세션은 그와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전설이다. 왜냐하면 이 전설에 우리가 지금 듣고자 하는 넉 장의 앨범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Before Marathon Session
5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리더 앨범 활동을 하던 마일스 데이비스는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시 재즈계를 떠났다가 1955년 복귀했다. 그리고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연주자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처음 그가 만든 밴드는 레드 갈란드(피아노), 오스카 페티포드(베이스), 필리 조 존스(드럼)이 함께 한 퀄텟이었다. 이 편성으로 그는 앨범 <The Musings Of Miles>(prestige 1955)를 녹음했다. 그런데 멤버 가운데 오스카 페티포드가 마일스 데이비스와 그다지 맞지 않았다. 그래서 폴 체임버스를 영입하고 필리 조 존스의 소개로 그래서 당시 디지 길레스피 밴드에서 솔로 연주를 할 기회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던 존 콜트레인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신예를 색소폰 연주자로 기용하게 되었다. 사실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는 소니 롤린스, 캐논볼 아들레이를 자신의 파트너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 1955년 7월 그는 텔로니어스 몽크, 제리 멀리건, 주트 심스 등을 이끌고 뉴 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해“Round Midnight”을 연주했다. 뮤트 트럼펫을 사용한 이 날의 연주는 자리에 있던 관람객들을 감동시켰다. 콜럼비아 레코드의 제작자 조지 아바키안 또한 이 연주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곧장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전속계약을 의뢰했다. 마침 콜럼비아 레이블의 당시로서는 진일보한 녹음시설에 끌렸던 마일스 데이비스는 이를 덜컥 수락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6일, 막 결성한 자신의 퀸텟을 이끌고 네 곡을 녹음했다. 그 중 “Ah-Leu-Cha”는 이듬해 완성될 앨범 <Round About Midnight> 앨범에 수록될 것이었다.
Start Marathon Session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는 밥 와인스톡이 운영하고 있었던 프레스티지 레이블과 계약이 남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56년까지 4장의 앨범을 더 녹음해야 했으니 콜럼비아사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을 발매하려면 적어도 1957년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물론 조지 아바키안은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남은 4장의 앨범을 녹음하는 것이었다. 1년 안에 넉 장 분량의 녹음을 한다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1955년만 해도 마일스 데이비스는 스튜디오 녹음만 5번을 했다.
하지만 1956년의 사정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1955년 11월 16일 녹음으로 앨범 <Miles>(Prestige)를 선보인 이후 1956년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은 바쁜 공연 활동을 벌여야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마일스 데이비스는 11월 유럽으로 건너가 자신의 퀸텟이 아닌 다른 미국 연주자들이나 유럽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을 해야 했다. 게다가 6월 10일과 9월 5일에는 1957년에 콜럼비아사를 통해 발매될 첫 앨범-<Round About Midnight>도 녹음해야 했다. 따라서 프레스티지 레이블과 남은 의무를 마치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마일스 데이비스는 이럼 상황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었던 모양이다. 그는 과감하게 남은 넉 장의 앨범 녹음을 두 번의 세션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1956년 5월 11일과 10월 26일, 이틀에 걸쳐 총 25곡을 녹음하게 되는데 후에 사람들은 이 녹음을 마라톤 세션이라 부른다.
About Marathon Session
하지만 이렇게 넉 장의 앨범이 단 이틀의 녹음으로 제작되었다고 해도 그 이틀이 연이어 있는 것도 아니고 약 6개월 정도의 시간차가 있으니 마라톤 세션이라는 표현은 다소 어울리지 않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틀에 걸쳐 녹음된 25곡이 모두 원 테이크 녹음, 그러니까 단 한번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앨범에 정식 수록될 최종 버전을 얻기 위해서 연주자들은 한 곡을 여러 차례 녹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것은 최근 재 발매되고 있는 50,60년대 재즈 앨범들이 다양한 얼터너티브 테이크를 수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마일스 데이비스와 그 퀸텟 멤버들은 단 한번에 만족스러운 최종 버전을 녹음했다.
여기에는 프레스티지 레이블의 제작자 밥 와인스톡의 녹음 철학이 큰 몫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평소 그는 재즈의 순간성을 살리기 위해 큰 실수가 없는 한 한번의 녹음으로 앨범을 완성한다 기준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 마일스 데이비스가 되었건 존 콜트레인이 되었건 밥 와인스톡의 지휘 하에 녹음된 앨범들 거의 모두는 얼터너티브 테이크를 지니고 있지 않다. 반면 두 번의 마라톤 세션 사이에 역시 여름과 가을 이틀에 걸쳐 콜럼비아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앨범 <Round About Midnight>은 다양한 얼터너티브 버전을 지니고 있다. 결국 밥 와인스톡의 녹음 철학이 역설적이게도 마일스 데이비스가 프레스티지 레이블과의 남은 계약을 쉽게 마무리 하게 도와준 셈이다.
그렇다면 밥 와인스톡의 성향을 이용해 마일스 데이비스가 25곡을 적당히 녹음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녹음된 연주를 들어보면 이런 생각은 쓸데 없는 것임을 단번에 느낄 것이다. 모든 곡에서 다섯 연주자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후에 The Miles David Quintet이라 불리게 될 최상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렇게 단 한 번의 연주로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이미 퀸텟이 지속적인 공연을 통해 안정된 호흡을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밥 와인스톡의 녹음 방침 이전에 퀸텟 멤버들은 스튜디오에서 그동안 클럽에서 연주했던 곡들 가운데 적당한 곡들을 선정해 공연을 하듯 편안하게 연주하면 그만이었다.
마라톤 세션에서 녹음된 25곡은 밥 와인스톡에 의해 정서를 기준으로 분류 되어 <Relaxin’>, <Steamin’>, <Workin’>, <Cookin’>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 (정확하게는 25곡 가운데 24곡만 싣고 있다. 제외된 한 곡은 “Round About Midnight”으로 앨범 <Miles Davis And The Modern Jazz Giants>에 수록되었다.) 하지만 각 앨범은 하나의 분위기가 아닌 저 네 타이틀의 정서를 고루 지니고 있다. 따라서 어느 하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이 마라톤 세션을 통해 제시된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사운드는 가냘프지만 확고한 자기 주관으로 공간을 장악하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명징한 (뮤트) 트럼펫, 그리고 그의 반대편에 위치해서 뜨거운 연주를 펼치는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 그리고 이 두 연주자 사이의 긴장을 극대화시키거나 이완시키며 사운드에 입체감을 불어 넣는 레드 갈란드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트리오, 이 세 부분의 유기적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의 대비적 효과는 템포와 상관 없이 퀸텟의 사운드를 뜨거움과 차가움, 긴장과 이완의 중간에 위치하게 만든다. 이것은 존 콜트레인을 영입할 때 이미 마일스 데이비스가 머리 속에 그리고 있던 부분이라 생각되는데 이런 트럼펫과 색소폰의 확연한 대비로 인해 퀸텟의 사운드는 쿨-밥, 그러니까 밥이긴 하지만 쿨한 정서를 담고 있는 재즈라는 평을 받곤 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자체로 퀸텟 사운드를 당시의 다른 그룹으로부터 구별 되게 하는 특징이 되었다. 그것도 시대의 전형이자 그 시대를 앞서가는 사운드로서 말이다.
한편 비록 이틀 만에 완성된 앨범들이었지만 이 넉 장은 동시에 발매되지 않았다. <Cookin’>과 <Relaxin’>이 1957년에 <Workin’>이 1959년에 그리고 <Relaxin’>이 1961년에 발매되었는데 이것은 마일스 데이비스를 콜럼비아사에 뺏겼다 생각한 밥 와인스톡의 대응이었다. 하지만 그가 약 5년에 걸쳐 넉 장의 앨범을 차근차근 발매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마라톤 세션의 사운드가 완성도는 물론 시대를 앞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이 2년간의 활동 끝에 1957년 이미 해체되었음에도 그 이후에 발매된 퀸텟의 앨범이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이 이를 말해준다.
After Marathon Session
콜럼비아 사에서 <Round About Midnight>이라는 또 다른 명반이 있기는 하지만 마라톤 세션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사운드의 절정이었다. 그렇기에 이듬해 퀸텟이 붕괴되었는지 모른다. 이후 퀸텟의 멤버들은 재즈계의 중심에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거의 무명이었던 존 콜트레인은 프레스티지 레이블에서 리더로서 앨범을 녹음하고 소니 롤린스를 넘어 당대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로 인정 받을 수 있었으며 레드 갈란드와 그 트리오는 독자적 개성을 인정 받아 소니 롤린스의 앨범 <Tenor Madness>(Prestige 1956)과 아트 페퍼의 앨범 <Meets The Rhythm Section>(Contemporary 1957)을 녹음하고 독자적인 트리오 앨범 <Groovy>(Prestige 1957)을 녹음하게 된다. 반면 마일스 데이비스는 빌 에반스, 윈튼 켈리, 캐논볼 아들레이, 지미 콥 등을 기존 퀸텟 멤버들과 조합하여 <Milestone>(Columbia 1958), <Kind Of Blue>(Columbia 1959) 등의 명반을 녹음하기는 했지만 다시 자신의 구미에 맞는 퀸텟-The Second Miles Davis Quinet-을 결성하기 까지 몇 년을 방황해야 했다.
20대 후반, 사촌 언니를 통해 처음 Miles Davis를 접했었습니다.
그때는 매력을 잘 몰라 그냥 흘려 들었던 것 같아요.
workin’ 을 듣고 난 후, kind of blue를 듣는데 균형감이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정적인데 결코 지루하지 않습니다!
절제를 아는 연주자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다른 연주자들을 잘 조절해서 나를 드러나게 하는 기술이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그것이 균형으로 이어지지 않났나 싶네요. ㅎ
결코 쉽지 않은(정말 어려운) 작업인데, 그걸 이렇게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했다는게 더 놀라운 것 같습니다.
Miles Davis는 들을수록 더 좋아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