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만인가? 1999년의 <Art Of The Song>이 마지막이었으니 11년 만의 새 앨범이다. 나는 찰리 헤이든의 쿼텟 웨스트의 새로운 음악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10여 년 만에 새로운 추억과 함께 돌아왔다. 알려졌다시피 찰리 헤이든 쿼텟 웨스트는 1930,40년대 할리우드 시대의 향수에 기반을 둔 음악을 선보여왔다. 목적이 확실하기에 이 그룹의 음악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뻔한 느낌을 주지 않는데 그것은 앨범마다 영화적 상상력을 적절히 가미했기 때문이다.
사진 보다는 직접 그림을 그렸던 지난 시절의 영화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표지를 한 이번 앨범도 기존 그룹의 음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이번 앨범에는 앨범 타이틀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여성 보컬을 게스트로 여러 명 등장시켰다. 멜로디 가르도, 카산드라 윌슨, 다이아나 크롤 같은 현 재즈를 대표하는 보컬들과 노라 존스처럼 장르를 가로지르는 보컬, 그리고 찰리 헤이든의 아내 루스 캐머룬,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까지 자신만의 목소리를 지닌 여성들이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찰리 헤이든이 이들 보컬들을 활용하는 방식은 쿼텟 웨스트의 정체성과 각 보컬의 정체성을 조화로이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안개처럼 휘감기는 멜로디 가르도의 보컬이 쓸쓸한 ‘If I’m Lucky’의 경우 쿼텟 웨스트가 아닌 멜로디 가르도의 개인 앨범 수록곡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그녀에게 잘 어울린다. 다이아나 크롤이 노래한 ‘Goodbye’도 그렇다. 반면 그동안 기타가 중심이 된 담백한 사운드를 배경으로 주로 노래했던 카산드라 윌슨이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배경으로 노래한 ‘My Love & I’는 그녀의 보컬이 지닌 숨은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결국 여러 여성 보컬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찰리 헤이든이 그녀들의 노래를 평소 즐겼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바로 여기에 쿼텟 웨스트의 음악이 과거를 향하면서도 보수적이지 않은 이유가 있다.
한편 각 보컬들의 노래 사이에 자리잡은 쿼텟 웨트스의 연주곡들도 매력적이다. 둔탁하지만 깊은 울림을 지닌 찰리 헤이든의 베이스를 중심으로 채도를 한 단계 낮춘 것 같은 어니 와츠의 색소폰, 바람 같은 결을 만들어 내는 스트링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진 사운드가 그대로 오래된 멜로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해도 좋을 것처럼 들린다.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아름답게, 가슴 짠하게 들릴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