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순간을 중시하는 음악인만큼 연주자들의 이합집산이 심하다. 스튜디오 앨범이 되었건 라이브 앨범이 되었건 마음 맞는 연주자들이 모여 어찌 진행될지도 모르는 긴장을 즐기며 즉흥적으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반면 재즈사를 빛낸 중요한 앨범들은 일정기간 유지된 정규밴드에서 나왔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퀸텟 앨범들이 가장 좋은 예이다. 이것은 진지한 음악이 나오기까지는 순간적 호흡이 아닌 멤버들의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무리 호흡이 잘 맞는 정규 밴드라 하더라고 수십 년을 가지는 못했다. 정점에 올랐다 싶으면 이해 해체되곤 했다.
그렇기에 1983년 결성 이후 올 해까지 30년간 지속된 키스 자렛 트리오는 그 기간 자체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키스 자렛은 물론 게리 피콕, 잭 드조넷 모두 자신만의 개성을 지녔음에도 이 세 연주자는 일체의 불화 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왔다.
하지만 30년이란 세월은 멤버들의 완벽한 이해와 조화를 가능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부함을 낳을 수 있다. 너무 서로를 잘 알다 보니 긴장이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 멤버들은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감상자들은 어느 정도 음악을 예상할 수 있기에 특별함이 없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어쩌면 트리오는 이러한 위험을 인지했던 것 같다. 2009년의 <Yesterdays>이후 4년 만에 앨범을 발표하니 말이다. 물론 그 사이 키스 자렛은 솔로, 듀오, 쿼텟 앨범으로 우리를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워낙 트리오 자체의 역동적 생명력이 강했기에 다른 활동과 상관 없이 트리오의 새로운 앨범을 기대한 애호가 또한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그 기대에 맞춰 트리오의 이번 앨범은 커다란 만족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6곡의 수록곡 가운데 이전 트리오의 앨범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곡이 5곡이나 수록되었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게다가 트리오가 종종 연주했던 ‘Solar’도 키스 자렛이 즉흥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Deep Space’와 연결된 형태로 연주되어 새로운 느낌을 준다. 그 가운데 레너드 번스타인이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을 위해 작곡했던 ‘Somewhere’와 ‘Tonight’이 연주된 것이 흥미롭다. 더구나 이 두 곡은 연달아 연주되었는데 평소 현장에서 연주곡을 결정하는 트리오의 성향을 고려하면 키스 자렛 작곡의 ‘Everywhere’와 연결되어 연주된 ‘Somewhere’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매우 좋아 곧바로 ‘Tonight’을 연주하지 않았나 싶다.
한편 이 앨범은 2009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가졌던 공연을 담고 있다. 그런데 당시 트리오는 <My Foolish Heart>, <Yesterdays>, <Out-Of-Towner>, <Always Let Me Go>등의 앨범이 녹음되었던 2001년만큼이나 최상의 컨디션을 보였던 것 같다. 서로의 연주를 경청하며 최고의 인터플레이를 유지하며 세 연주자 각각의 솔로에 가까운 연주가 시종일관 이어지는데 그것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특히 테마의 멜로디를 확장시키는 키스 자렛의 상상력이 인상적이다. ‘Solar’앞에 ‘Deep Space’를 연주하여 전체 사운드를 심연에서 태양을 향한 상승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나 막연한 한 지점에서 도처(到處)로 확장한 ‘Somewhere’와 ‘Everywhere’의 연결 곡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타이포그라피나 추상적 이미지를 표지로 사용했던 관례를 깨고 자유로이 날고 있는 새들의 구체적 이미지를 표지로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이리라.
익숙한 듯하면서도 그 안에 새로움을 담아낸 연주와 앨범. 그렇기에 트리오가 30년간 지속될 수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