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키스 자렛의 활동은 트리오와 솔로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가 들려주는 트리오와 솔로 연주에 감동하다가도 조금은 색다른 편성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를 키스 자렛 본인이나 제작자 만프레드 아이허도 느꼈던 것일까? 뜻밖에도 이번 앨범은 그동안 미공개로 남아 있던 70년대 유러피안 쿼텟의 연주를 담고 있다. 정확히는 1979년 4월 16일 일본 도쿄의 나가노 선 플라자에서 있던 공연이다. 글쎄. 새로운 쿼텟 녹음이 아닌 것에 실망하는 사람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유러피안 쿼텟의 새로운 연주를 만나게 해준다는 점에서 반가워 하리라 생각한다. 얀 가바렉(색소폰), 팔레 다니엘손(베이스), 욘 크리스텐센(드럼)과 함께 했던 그의 유러피안 쿼텟은 약 5년간 활동하면서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두 장의 라이브 앨범을 남겼다. 그리고 그 앨범들 모두 시대를 앞서간 인상적인 연주를 담고 있기에 쿼텟이 조금 더 많은 앨범을 발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도 30년 이상 공개되지 않을 정도라면 당시 발매되었던 <Personal Mountains>나 <Nude Ants>같은 라이브 앨범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연주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두 장의 CD에 정리된 공연은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의 감상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매 순간 네 연주자는 불타는 듯한 열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한편 이를 기반으로 거대한 극적인 흐름으로 감상자를 몰아의 상태로 이끈다. 20분이 넘는 ‘Personal Mountains’와 ‘oasis’가 대표적이다. 한편 이후 트리오의 레퍼토리가 되는 ‘So Tender’, ‘Prism’그리고 ‘New Dance’에서는 귀에 쏙 들어오는 테마와 리듬으로 앞의 자유로운 연주가 주는 긴장을 완화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제서야 앨범이 발매되었을까? 그것은 앨범이 앞에 언급한 두 라이브 앨범과 같은 시기에 녹음되었기 때문이었다. <Personal Mountains>는 이 앨범과 같은 날인 4월 16일과 17일에 녹음되었으며-따라서 비교감상이 필요하다- <Nude Ants>는 한 달 뒤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에서 녹음되었다. 그렇기에 발매가 늦춰진 것이다. 실제 <Personal Mountains>만 해도 <Nude Ants>와의 혼돈을 피하기 위해 10년 뒤에 발매되지 않았던가?
물론 뒤늦게 30년 전의 연주를 듣자니 그 신선하고 역동적인 연주 속에서도 그의 젊은 날에 대한 향수와 익숙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확실히 70년대의 키스 자렛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경외심이 든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미공개로 잠자고 있던 음원들이 잠에서 깨어나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 같다는 행복한 불안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