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드럼 연주자 볼프강 해프너는 퓨전 재즈 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 대해 나는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해왔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나름 흥미로웠다.
이 앨범은 ACT에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기 위해 시작한 Nu Jazz 카탈로그에 속하는 앨범이다. 즉, 일렉트로 재즈 앨범이라 하겠다. 그런데 나는 드럼 연주자가 일렉트로 재즈를 하는 것에 살짝 회의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강박적 반복 중심의 전자비트, 프로그램을 통한 리듬의 창조는 결국 드럼 연주자의 존재감을 희석시키기 때문이다. 아예 완벽한 드럼 머신이 되고자 하는 에릭 트뤼파즈 밴드의 드럼 연주자 마크 에르베타처럼 이라면 모를까? 이번 앨범에서도 볼프강 해프너의 드럼은 상당히 단순화 되었다. 그래서일까? 전곡의 작곡은 물론 키보드까지 연주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운드는 리듬 중심이라기 보다 다소 멜랑콜리한 공간적 여백을 강조하고 있다. 리듬이 반복되지만 중요한 것은 우주적인 공간을 헤매듯 흐르는 트럼펫, 혹은 트롬본이다. 그런데 이 사운드를 듣다 보면 마일스 데이비스의 후반기 사운드가 연상된다. 매우 강하게. 즉, 그만큼 진부한 느낌이 든다는 것인데 조금 더 사운드를 풍부하게 하는 효과를 넣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형을 연상하게 하는 앨범 표지처럼 실재가 아닌-비록 가상의 전자적 세계를 그린다 하더라도-느낌의 사운드다. 그래도 라스 다니엘슨과 닐스 란드그렌이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볼륨감을 획득했다고 본다. 특히 라스 다니엘슨의 베이스는 분명 앨범의 큰 매력 가운데 하나다.
한편 이 앨범은 나름 볼프강 해프너에게 중요했던 모양이다. 리믹스 앨범을 내더니 이번에는 앨범 수록 곡을 어쿠스틱으로 연주한 <Acoustic Shapes>를 새로 발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