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앨범의 화두는 쳇 베이커이다. 인기도로 본다면 쳇 베이커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 개인의 생각이 한 시기의 재즈 사조 전체로 확장될 정도로 시대 장악력과 후대에 대한 정치적인 힘을 지녔던 반면 쳇 베이커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연주를 끝까지 펼쳤다. 어쨌든 하나의 스타일리스트로서 쳇 베이커의 모습은 고정된 이미지가 있고 따라서 추모 앨범을 만든다면 고려할 지표가 매우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엔리코 라바와 파올로 프레주는 추모 앨범으로서는 약간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부드러운 발라드로만 채워질 줄 알았던 것과는 달리 호레이스 실버의 불루스 곡 ‘Doodlin”을 필두로 찰리 파커의 ‘Anthropology’, 소니 롤린스의 ‘Doxy’, 거쉰의 ‘Strike Up The Band’같은 곡이 담겨있다는 것이 큰 차이로 다가온다. (물론 그 유명한 ‘My Funny Valentine’이나 ‘You Can’t Go To Home Again’같은 쳇 베이커의 연주로 유명한 곡들이 실려있기는 하다.) 이런 선곡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어둡고 우울한 발라드 연주자라는 쳇 베이커의 가장 유명한 측면 외에 밝은 분위기의 쳇 베이커를 드러내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혹자는 이 앨범을 들으며 쳇 베이커의 분위기(shades)를 찾기 힘들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것은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쳇 베이커가 자주 연주하던 곡들, 특히 발라드 곡들만 건드린다면 오히려 너무나 상투적인 앨범으로 전락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상기 예를 들었던 곡들을 정말 쳇 베이커가 연주했는지는 나로서도 확실하지 않고 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두 연주자의 의도는 단지 쳇 베이커의 스타일을 그대로 연주해 과거 지향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쳇 베이커가 이들에게 남긴 음악적인 영향, 심리적인 영향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쳇 베이커의 스타일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굳이 쳇의 그늘 뒤로 숨기려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즉, 분명 쳇 베이커를 그리는 앨범임은 분명하지만 단순히 그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르는 연주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연주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연주 스타일을 유지한다. 쳇 베이커의 모습은 두 연주자의 현재를 이루는 요소의 하나로서 걸러져 나타날 뿐이다. (물론 파올로 프레주의 연주 스타일에 이미 배어 있는 쳇 베이커의 스타일이 이번 앨범에서 의도적인 부분이냐 아니냐는 의문이 남아 있기는 하다.)
사실 파올로 프레주는 그가 재즈 입문시 쳇 베이커를 만났고 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고 밝혔기에 어느 정도 이 앨범의 참여가 이해할 수 있으나 이미 하나의 진보적 스타일리스트로서 입지를 굳힌 노장 엔리코 라바가 쳇 베이커의 추모 앨범에 참여했다는 것은 의외이다. 오히려 엔리코 라바는 델로니어스 몽크의 추모 앨범에 더 어울리지 않을지. (실제로 앨범은 모르지만 몽크의 추모 라이브는 이미 가진바 있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앨범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음악적 방향을 능숙히 소화해내는 대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이탈리아적 감성의 발라드를 종종 연주했었기에 이 앨범에서 그의 연주는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후배 파올로 프레주를 자신의 아우라로 누르기보다는 동등한 위치에서 존중하면서 앨범 내에서 주어진 역할에 매우 충실한 연주를 펼치고 있다.
음악만 놓고 보더라도 트럼펫 둘이 리드를 하는 퀸텟은 아주 드문 일로 그 자체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두 신구 이탈리아 트럼펫 연주자들은 왼쪽과 오른쪽, 뮤트 트럼펫과 일반 트럼펫(아니면 플루겔 혼)으로 각 곡마다 악기를 나누어 서로의 공간과 색을 존중하고 지키면서 동시에 조화롭게 중간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그래서 쳇 베이커의 대표곡격인 ‘My Funny Valentine’의 경우 좌우에서 펼쳐지는 연주는 하나의 대결이라기 보다는 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주고 받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솔로를 듣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한편 피아노를 연주하는 스테파노 볼라니의 중재자 역할 또한 주목할 만하다. 단순히 리듬 파트를 리드하는 것이 아니라 두 솔로 연주자들에게 분위기로서의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쳇 베이커에게 언제나 그를 지원하는 기타나 피아노 연주자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처럼 이 앨범에서 파올로 프레주나 엔리코 라바의 트럼펫보다는 볼라니의 피아노가 쳇 베이커의 분위기를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끝으로 음반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사실 이 앨범은 Via Vento라는 이태리 라벨에서 먼저 발매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Label Bleu가 제작자를 바꾼 뒤 첫 작업으로 이 앨범의 재발매를 선택했는지 의문이다. 이 앨범의 훌륭함 때문이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라벨 고유의 색이나 변화의 이유를 기존 타 라벨의 음악으로 대신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좋다. 그 자체가 이 앨범의 가치를 하락시키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