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z Production은 재즈 전문 라벨이라기 보다는 프랑스 부르타뉴 지방의 음악을 전문으로 발매하는 일종의 월드 뮤직 라벨에 더 가깝다. 그래도 매우 창작적이고 세련된 음악들을 양산해내고 있는데 그 중 디디에 스키방과 그의 음악은 라벨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디디에 스키방은 재즈 트리오로 시작을 한 이후 수년 전부터 혼자서 브루타뉴 지방의 이미지를 피아노로 표현하거나 아니면 오케스트라와 함께 표현해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월드 뮤직 라벨 속에서 한 지방을 나타내는 음악을 하는 사람을 왜 소개하냐고 질문을 한다면 그것은 스키방의 대부분 앨범들이 즉흥 솔로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 <Rozbras-아마도 부르타뉴 지방의 방언인 듯한데 지명을 나타낸다고 한다->의 경우 <Molène>, <Porz Gwenn>에 이어지는 솔로 3부작의 마지막에 해당한다. 여전히 미셀 테르시켈이 브루타뉴 지방을 찍은 작은 사진 첩을 동반해 음악과 이미지를 연결하려는 그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디디에 스키방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키스 자렛과의 유사성이다. 그의 솔로 연주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까지 기존의 활동이 키스 자렛의 경우와 매우 유사하기에 이러한 혐의를 피할 수는 없다. 실제로 얼마 전 파리 공연의 경우 튜닝시 엔지니어에게 한 음을 말하게 한 뒤 그 음에서부터 과도한 잔향과 함께 즉흥 솔로를 30여분간 펼쳤는데 이것은 최소한 방법적으로는 자렛의 솔로 활동의 영향을 받았음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음악을 들으면 그 의혹은 더 증폭된다. 스타일은 물론 터치, 음색에서 매우 흡사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면 첫 곡 ‘Image1’을 예로 들 수 있겠는데 E 마이너 불루 노트 음계로 시작하는 도입부를 듣는 순간 당신은 거의 자연적으로 키스 자렛의 솔로-특히 쾰른 콘서트-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렛이 순간적이며 극적인 비약의 과정을 거침없이 드러낸다면 디디에 스키방의 연주에서는 자렛에게서 발견하는 열정을 찾기 힘들다. 물론 이것을 음악 외에 브루타뉴라는 소재가 음악 외적 요소의 영향 때문에 자유로운 연주를 펼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앨범의 12곡, 12 이미지는 자신의 곡 외에 브루타뉴 지방의 민요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비약을 자제한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지난 <Porz Gwenn>부터 긴 연주보다는 짧막한 연주로 그의 상상을 분절시켜 놓고 있는데 이는 키스 자렛의 스타일과의 비교를 피해보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으나 이로 인해 디디에 스키방의 음악을 더 파괴시키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솔로 연주에 있어서 너무 쉽사리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인다. 즉, 너무나 토날(tonal)하다. 그래서 그의 솔로는 비약의 가능성을 잃고 자기 안에 갇혀 버린다. 너무나 뻔한(cliché) 진행과 구성이다. 안정감, 부드러움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아기자기한 멜로디만 남고 그의 출중한 솔로 실력이 뒤로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얼핏 보면 심심한 뉴 에이지 피아노 앨범으로 볼 수 있을 정도다.
한편 그럼에도 자꾸 주저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키스 자렛이라는 그림자를 지워놓고 본다면-불가능한 일이지만-음악적으로는 몰라도 감정적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쾌를 주기 때문이다. 차라리 일종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매우 너그러운 시선으로 이 앨범을 볼 수 있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아마도 키스 자렛의 음악을 그다지 많이 듣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앨범을 매우 좋아할 지도 모른다. 멋진 사진과 함께 자연을 상상하게 하는 음악으로… 그런데 문제는 이런 처음의 호감을 끝까지 유지하게 하는 요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단순 피아노 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모르겠으나 (다시 돌아와) 키스 자렛의 솔로 연주가 유지하고 있는 신선한 긴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곧 싫증을 가져다 줄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