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노 살루지는 아스토르 피아졸라 이후 아르헨티나의 탕고를 계승,발전시키는 차원을 넘어 다양한 유럽의 음악과 결합하여 새로운 (세계적) 전통을 만들려고 하는 반도네온 연주자이자 작곡가다. 그래서 그의 음악들은 아르헨티나 적인 동시에 유럽적인 면을 보인다. 이것은 그가 단순히 탕고라는 민속적인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유럽연주자들과 만남을 지속적으로 가져왔다는 것에 기인한다. 이미 몇 해전에 소개했었던 폴란드 트럼펫 연주자 토마즈 스탄코 같은 연주자들의 앨범이 그런 비근한 예일 것이다. 그리고 로자문드 스트링 쿼텟과의 협연-<Kultrum>(ECM 2000)-은 유럽의 클래식까지 자신의 음악을 확장하려는 그의 의도를 볼 수 있었다.
이번 앨범은 1997년의 <Cite De La Musique>(ECM)에 비교될 수 있는 앨범이다. 그것은 기타 베이스 반도네온이라는 편성 때문인데 실제 여전히 그의 아들 호세 M 살루지가 기타연주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변화는 단지 베이스가 마크 존슨에서 팔레 다니엘슨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베이스 연주자의 변화가 음악에도 변화를 살짝 주면서 훨씬 더 많은 감상의 재미와 감동이 만들어 졌다. 즉, 이번 앨범에서 베이스의 참여가 보다 더 적극적이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트리오의 유기적 느낌이 더 많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젠 반도네온 혼자 전면에 나서는 일이 드물다. 그보다는 기타와 베이스가 보다 더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한 공간을 할당받았으며 그래서 회색조의 느낌은 여전하지만 음악적인 면에서 무척이나 입체적이고 화려해졌다는 인상을 받게된다. 이 트리오의 연주를 보면 마치 트라이 앵글을 보는 것같다. 훌륭한 녹음 탓이기도 하지만 이 세사람은 공간을 명확히 3등분하고 있다. 그런데 그 3등분의 구성은 곡에따라, 솔로 연주자에 따라서 무척이나 유동적이다. 동일 평면상에 중간과 좌우에 세악기를 놓고 솔로의 드러남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그 배치 관계가 결정된다. 예로 전면의 솔로 악기에 후면의 좌우에 다른 두악기가 배치거나, 전면 좌우에 솔로 두악기가 배치되고 후면에 나머지 한악기가 배치되는 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관계는 곡에 따라 각각 알맞는 형태로 드러난다. (한편 반도네온의 경우 양손이 분리되기에 반도네온의 위치에 따라 보다 더 다채로운 상상이 가능하다.) 이러한 공간적 위치로 인하여 이들의 연주는 분명 정적인 동시에 움직임이 많게 느껴진다. 회전하는 삼각형이라고 할까? 각 악기들이 수평적인 고정 위치에서 솔로를 펼쳐나가기에 연주의 중심이 마치 회전하는 느낌을 준다.
한편 정서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번 앨범에도 여전히 살루지 특유의 회한과 우수의 정서가 긍적적으로 드러난다. 이 앨범을 감상하면서 나는 감동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음악들은 슬픔을 유발하면서도 결코 감상자를 직접 눈물나게 만들지는 않는다. 어떤 눈물을 흘리는 대상을 생각나게 할뿐이다. 다시 말해 감정적 몰입보다는 이미지의 환기가 더 강하게 부각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적으로는 아르헨티나의 정서를 반영하면서 유럽적인 분위기와 결합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정서적인 부분에 호소하는 음악이면서 동시에 이 세사람의 연주는 그냥 멍하니 듣고 있을 수만은 없는 지적인 음악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디노 살루지의 따스한 정서가 ECM의 차가운 공간안에 놓이게 되면서 발생하는 뜻밖의 특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한적한 해안 마을의 풍경, 바다, 푸른 하늘, 절벽등을 담담하게 연상시키면서 정작 감상자 자신은 그 풍경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풍경이 보이는 어느 가구가 없는 선선한 빈 집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이 앨범의 빛과 그늘의 콘트라스된 표지를 보라!) 따라서 이 앨범은 순간적인 1차적 감상 후에 사려깊은 2차적 감상을 요구한다.
한편 디노 살루지의 음악이 아르헨티나 탕고(의 정서)에 기대고 있음에도 결코 과거의 좋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음을 무척이나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의 음악은 분명 현재 그 자체에 머물러 있다. 이는 그가 언제나 새로운 아르헨티나 음악의 전형을 제시하고자 하는 강한 의욕을 가졌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그가 오늘을 살면서 그 삶의 느낌을 음악으로 그려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70을 앞에 둔 할아버지가 그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나는 참 좋다. 아마도 이 앨범은 올해의 수확 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