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로 오래 전 신문을 검색하다가 1975년 2월 <재즈 북>의 저자 요아힘 베렌트가 내한했던 것을 알았다. 목적은 강연과 공연. 경향 신문이 주최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때 공연을 위해 함께 왔던 6명의 연주자가 있었다. 트럼펫 연주자 만프레드 쇼프가 이끄는 섹스텟이었는데 그 안에는 건반주자 야스퍼 반 호프가 포함되어 있었고 나머지 멤버는 모르겠다. 아무튼 당시 기사에서도 재즈가 한국에서는 불모지와 다름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이런 유럽 연주자들이 왔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지명도가 낮아 가격이 좀 싸서 그랬나?) 이 섹스텟은 2월 26일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 공연을 가졌다. 그날 공연에는 기대 이상으로 2000명이라는 관객이 몰렸다. 지금 해도 쉽지 않는 관객수인데 어찌 그리 모였는지 궁금하다. 티켓 가격은 500원! ‘유렵 재즈, 현대 재즈, 동서양을 가미한 재즈 등이 연주될 때마다 청중들은 완전히 클래식 음악 같다’며 ‘재즈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곡으로 우리의 ‘태평가’를 연주했는데 해설을 맡은 요아힘 베렌트는 재미있는 곡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지금 상상해도 재미있는 공연이었던 듯.
이 기사를 읽고 마침 최근 발매된 만프레드 쇼프 퀸텟의 앨범이 생각나서 들어보았다. 이 앨범은 1976년, 그러니까 한국을 다녀간 이듬 해에 발표한 <Scales>부터, <Light Lines>, <Horizons> 앨범을 합본 정리한 것이다. 다른 ECM의 합본 반 앨범들이 원 앨범의 구성을 그대로 존중하고 앨범 타이틀 또한 합본된 앨범들 타이틀을 표기하는 것으로 해결했던 것과 달리 이 앨범은 <Resonance>라는 새로운 타이틀-<Light Lines>의 수록 곡이다-을 달고 곡의 배열을 조금 다르게 했다. 이것은 석 장의 앨범을 두 장의 CD에 담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horizons>앨범에서 두 곡이 빠졌고 <Scales>을 제외하고 나머지 앨범들의 수록 곡들의 배열이 섞였다.
어쨌건 이 앨범은 70년대 ECM의 창조적인 사운드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공간적 여백을 생산하고 느슨한 듯하지만 섬세한 구성력이 있는 연주들이 멜로디와 구조의 측면 모두에서 상당한 만족으로 다가온다. 지금 발매되는 ECM의 다른 앨범들보다 더 신선하고 더 앞섰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느낌이 좋다. 특히 리더 외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사운드의 중심을 유지하는 귄터 렌즈의 베이스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야스퍼 반 호프와 라이너 브뤼닝하우스의 건반도 ECM 피아니즘을 잘 반영한다.
요아힘 베렌트와 만프레드 쇼프의 내한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경향 신문을 비롯한 주요 신문은 유난히 재즈 기사를 그 즈음 자주 실었다. 그런데 내용은 지금이나 대동 소이하다. 재즈의 역사, 한국은 재즈가 생소하다 뭐 이런 내용. 결국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변한 것은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