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몬 발레는 쿠바 출신이지만 10대 시절 네덜란드로 넘어간 피아노 연주자다. 그래서 그의 연주에서는 꼭 쿠바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희미하다. 이런 그가 ‘추억’을 화두로 앨범을 녹음했다 했을 때, 게다가 자작곡과 함께 에르네스토 레쿠오나같은 쿠바 작곡가의 곡이 수록된 것에서 나는 그가 모처럼 쿠반 스타일의 연주를 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그의 피아노 솔로는 역시나 쿠바의 흔적을 그리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쿠바 출신이 아닌 연주자가 쿠바 작곡가의 곡을 연주할 때 정도의 흔적이 감지될 뿐이다. 아마 라몬 발레에게 ‘추억’이란 쿠바가 아닌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을 의미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쿠바적인 면들이 탈색된 그의 연주에서 나는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하겠다. 왼손과 오른손 모두 강한 인상을 주지 않고 하나의 흐릿한 이미지만 제시할 뿐이다. 분명 깊이 있는 연주라 말하고 싶게 하면서도 그의 감성에 공감할 수가 없다. 그저 내겐 심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