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티노는 파리와 로마를 운행하는 기차를 지칭하는 것인 만큼 트랜스 알핀 즉, 알프스산맥을 사이에 둔 이탈리아와 프랑스 두 국가의 분위기를 의미하는 형용사로 그 음악적 기후가 정의된다. 그것은 비록 미국 연주자 글렌 페리스가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세 연주자의 국적이 프랑스(미셀 베니타)나 이탈리아(알도 로마노, 파올로 프레주)라는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글렌 페리스의 경우에도 미국보다는 프랑스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인적 구성을 기본으로 이전 Label Bleu를 통해서 발표했던 두 장의 앨범은 음악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한다기 보다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음악이 지니고 있는 유쾌함과 서정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번 앨범도 ‘Chap.3’라는 제목이 그러하듯이 이전 앨범에서 들려주었던 음악의 연장에 놓인다.
실질적인 리더는 알도 로마노이지만 그의 퀄텟이 아니라 팔라티노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처럼 4명의 연주자는 대등한 힘을 외형적으로 지닌다. 그래서 태드 대머론의 ‘In a Misty Night’을 제외한 나머지 14곡은 4명의 연주자 각자가 이번 앨범을 위해 가져온 곡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 다양함 속에서도 하나의 분위기 하에 모였기에 앨범의 통일감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가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한 것이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파올로 프레주와 알도 로마노, 두 이탈리아 연주자의 곡은 무척이나 우수가 가득하고 낭만적이다. 우리의 정서와도 잘 맞는 곡이라 생각되는 ‘Sapore di Si Minore’, ‘Arte Povera’나 ‘La Sevigliana’같은 곡을 권한다. 한편 글렌 페리스와 미셀 베니타의 곡은 유쾌함과 여유가 가득해 앨범에 생기를 제공한다. 이렇게 자연스레 역할 분담이 되어 결코 그룹에 무조건적으로 멤버가 종속되지 않고 능동적으로 그룹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시도가 매우 성공적이다.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은 보컬이 없음에도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두 명의 혼 연주자에 의해서 실현되고 있는데 이 들은 미셀 베니타가 둥그런 베이스 톤으로 가벼운 스윙감과 함께 제시하는 음을 기반으로 테마를 수평적으로 이어 받아 노래하듯이 즉흥 연주를 펼쳐나간다. 게다가 피아노가 없기에 이 즉흥 연주는 보다 더 멜로딕한 면을 지닌다. 아주 친근한 느낌을 주는 멜로디를 한올 한올 뽑아낸다. 한편 그러면서도 싫증을 유발할 수 있는 단순함의 함정에 쉽사리 빠져들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글렌 페리스의 트롬본과 파올로 프레주의 트럼펫간의 대비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거의 사람의 목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힘찬 트롬본-이것은 글렌 페리스의 연주법에서도 기인한다.-과 파올로 프레주 특유의 유연한 트럼펫은 조화롭게 테마를 함께 연주하면서도 가벼운 긴장을 만들어 낸다. 특히 이런 대위적인 두 악기의 관계는 편재하며 전체를 리드하는 알도 로마노의 드럼과 함께 사운드의 골격-보통 피아노에 의해 만들어지는-을 강화하는 효과를 유발한다. 이렇게 해서 전체 사운드는 우리에게 감정적으로 소구한다.
그리고 연주에 있어서 일체의 장식을 제거했다는 것도 장점이다. 대부분의 곡들이 재즈 곡치고는 매우 짧게 연주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아쉬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테마를 기조로 가볍게 즉흥을 즐긴 뒤 곧바로 테마의 반복과 함께 곡을 마치는데 그 속에서도 들려 줄 것은 다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로 전체 사운드는 여유가 있으면서도 느슨하지 않고 매우 컴팩트한 면을 보인다.
오랜만에 만나는 전체적으로 매우 잘 만들어진 편안한 앨범이다. 음악적 심각함보다는 여행할 때의 막연한 기대와 감상을 갖고 듣는다면 상당한 쾌감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