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흑인 음악으로 되 살린 니나 시몬의 노래
- 사회 참여적 보컬 니나 시몬
니나 시몬은 여러 재즈 보컬의 명인들 가운데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이다. 1933년 유니스 캐틀린 웨이먼(Eunice Kathleen Waymon)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그녀는 남성의 목소리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낮음 음역의 콘트랄토 보이스를 앞세워 감상자의 가슴을 흔드는 노래를 남겼다.
원래 그녀는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마일스 데이비스가 수학했던 줄리어드 스쿨에서 정식 클래식 교육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학교의 장학생 선발에서 (그녀에 따르면 음악 실력 부족이 아닌 흑인 이라는 이유로) 탈락하면서 그녀의 삶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렀다. 학비를 벌기 위해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한 것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자신의 애완 동물의 이름이었던 니나와 프랑스의 유명 배우 시몬느 시뇨레 Simone Signoret의 이름을 결합해 니나 시몬이란 가명을 짓고 재즈 보컬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재즈 보컬로서의 삶만을 살지 않았다. 그녀가 재즈 보컬로 활동을 시작해 인기를 얻어나갔던 1950, 1960년대 미국은 인종차별이 극에 달했고 이를 거부하는 시민, 인권운동이 뜨겁게 타올랐던 때였다. 그녀는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을 관조하는 대신 적극 참여했다. 그래서 1965년 흑인들의 투표권 획득을 목적으로 기획된 셀마 몽고메리 행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연설을 하는 등 크고 작은 인권운동 집회에 참여했다.
인종 차별에 적극 저항하면서 그녀는 이에 걸맞게 흑인의 자유를 향한 외침의 성격이 강한 노래, 여성의 자존을 부르짖는 노래 등을 불렀다. ‘Mississippi Goddam’, ‘I Wish I Knew How It Would Feel to Be Free’, ‘Sinnerman’, ‘Strange Fruit’, ‘Black Is the Color of My True Love’s Hair’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이를 곡을 그녀는 재즈뿐만 아니라 당시에 재즈보다 더 흡입력이 있었던 소울, 블루스 스타일로 노래했다. 또한 ‘I Want A Little Sugar In My Bowl’같은 자작곡도 노래했지만 데이빗 보위의 ‘Wild Is The Wind’, 랜디 뉴먼의 ‘Baltimore’, 스크리밍 J 호킨스의 ‘I Put A Spell On You’ 등 다른 아티스트의 히트 곡들을 새롭게 노래하기도 했다.
그녀의 정치적 성향은 70년대 미국의 베트남 참전을 반대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그녀는 미국을 떠나 리베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을 떠돌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 니나 시몬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R&B와 소울의 인기 아티스트들
다소 장황하게 니나 시몬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이 그녀를 위한 헌정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를 주제로 제작된 리즈 가버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What Happened, Miss Simone?>의 개봉에 맞추어 이를 지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사운드트랙은 아님을 명심하자.)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헌정 앨범에 로린 힐, 어셔, 재즈민 설리번, 랄라 하더웨이, 메리 J. 블라이즈, 앨리스 스미스, 그레이스, 래퍼 커몬, 그레고리 포터 그리고 니나 시몬의 딸 리사 시몬 등 재즈가 아닌 R&B, 소울 쪽의 아티스트들이 참여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레고리 포터를 재즈 쪽으로 놓을 수 있지만 사실 그는 재즈와 소울을 오가며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재즈 보컬이 아닌 R&B, 소울 보컬들이 니나 시몬에 대한 존경을 표하게 된 데에는 다큐멘터리의 제작자이자 이 앨범의 총괄 제작자인 제이슨 잭슨이 한 때 로린 힐의 매니지먼트 팀에서 일했다는 것이 작용했다. 그는 로린 힐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던 1999년 공연장에서 니나 시몬을 만났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니나 시몬의 삶과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후에는 리사 시몬을 알게 되어 니나 시몬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미 언급했듯이 니나 시몬이 생전 재즈는 물론 블루스, 소울 등 당대의 인기 있는 장르를 자유로이 오가며 노래했음을 생각하면 이번 앨범의 구성이 재즈보다는 R&B, 소울에 가깝다는 것을 그리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고인에게는 사회 참여적인 활동을 하며 노래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재즈 외에 소울과 블루스를 노래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번 헌정 앨범 또한 사회 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의 니나 시몬에 대한 추억을 라이너 노트로 담고 있는 것을 보면 니나 시몬의 사회 참여적 성향을 많이 고려한 듯싶다.
- 로린 힐과 로버트 글래스퍼, 니나 시몬의 음악을 새롭게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들 또한 사회 참여적인 성향을 노래에 담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니나 시몬의 음악, 니나 시몬의 노래에 담겨 있던 진중한 맛, 가슴을 울리는 정서적 깊이를 자기 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 가운데 아무래도 로린 힐의 존재감이 제일 돋보인다. 그녀는 전체 16곡 가운데 제일 많은 6곡을 자신의 직접 제작까지 담당하며 노래했다. 니나 시몬에 대한 그녀의 헌정 방식은 고인에 대한 추억을 현대적인 사운드 안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 결과 ‘Feeling Good’은 니나 시몬이 했던 것처럼 무반주 솔로로 시작해 장대한 브라스 섹션이 울리는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소울이 강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보컬을 과감하게 내세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Wild Is The Wind’도 마찬가지다. 어두운 긴장으로 가득한 피아노 반주를 중심으로 상실감 가득한 니나 시몬의 노래가 흘렀던 원곡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니나 시몬에 대한 로린 힐식 헌정이 가장 흥미롭게 표현된 곡은 ‘I’ve Got Life’이다. 이 곡에서 로린 힐은 니나 시몬이 1969년 할렘 르네상스 페스티벌에서 노래한 버전을 샘플링으로 사용하고 그 위에 자신의 랩을 덧입혀 ‘옷도 집도 심지어 신도 내겐 없지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로운 몸이 있다’는 노래가 지닌 선언적인 성격을 새롭게 표현했다. 그래서 과거 니나 시몬의 노래에 흥분했던 일반 감상자들의 마음을 지금의 감상자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해준다. 니나 시몬이 노래 대신 피아노를 연주에만 집중했던 ‘African Mailman’도 마찬가지다. 로린 힐 또한 이 곡에서는 제작에만 집중해 미셀 페레(건반) 등의 연주자들을 통해 전자적인 색채가 돋보이는 현대적인 연주곡으로 탈바꿈시켜 원곡의 흥분을 새롭게 느끼게 했다.
한편 ‘Black Is The Color Of My True Love’s Hair’에서는 단순한 피아노 반주에 슬픔 가득한 목소리로 노래했던 니나 시몬과 달리 일렉트로닉스를 사용해 우주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등 곡 안에 상승과 하강을 넣어 극적인 효과를 최대화했다. 니나 시몬의 노래가 지닌 극적인 면을 연주를 통해 반영하는 것은 ‘Ne Me Quitte Pas 떠나지마’에서도 반복 된다.
나머지 10곡 가운데 8곡은 재즈와 R&B, 소울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피아노 연주자 로버트 글래스퍼가 편곡과 제작을 담당했다. 최근 R&B, 소울은 물론 록까지 자기 식으로 편곡해 연주한 앨범 <Covered>를 발표하기도 한 그는 니나 시몬의 노래들을 원곡을 존중하면서도 현재의 감성에 맞는 곡으로 새롭게 바꾸었다. 특히 그는 니나 시몬의 노래에 담긴 무게감을 줄이고 대신 달콤함을 강화하는 방식을 선호한 것 같다. 매리 J. 블리지가 노래한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나, 그레이스가 노래한 ‘Love Me Or Leave Me’, 랄라 하더웨이와 커몬이 함께 한 ‘We Are Young Gifted & Black’, 리사 시몬이 노래한 ‘I Want A Little Sugar In My Bowl’ 등은 모두 원곡의 어두움, 슬픔의 정서를 탈색시키고 대신 현재의 낭만적이고 도시적인 감각이 돋보이게 했다.
로버트 글래스퍼의 제작이 가장 돋보이는 곡은 앨리스 스미스가 노래한 ‘I Put A Spell On You’이다. 니나 시몬의 목소리만큼이나 뜨거웠던 사운드의 이 곡을 로버트 글래스퍼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몽환적인 분위기로 바꾸어 온도를 낮추었다. 대신 니나 시몬과는 다른 질감이지만 앨리스 스미스의 노래를 통해 사랑을 갈구하는 원곡의 정서를 유지시켰다. 그래서 원곡과 정서적으로는 통하면서도 질감에 있어서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재즈민 설리번이 노래한 ‘Baltimore’도 마찬가지다. 니나 시몬 본인은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원곡의 래게 리듬을 더 강조해 가벼운 맛을 더 높였다.
그레고리 포터가 노래한 ‘Sinnerman’은 원곡의 분위기를 제대로 반영했다. 신의 심판을 피하고자 하는 죄인’을 묘사한 이 곡을 니나 시몬은 빠른 템포를 사용해 긴박한 흥분을 이끌어냈었다. 로버트 글래스퍼 또한 원곡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했는데 그레고리 포터의 두텁고 풍성한 성량이 돋보이는 노래가 이를 훌륭히 구현했다.
한편 로버트 글래스퍼나 로린 힐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곡은 어셔가 노래한 ‘My Baby Just Cares For Me’이다. 이 곡은 힙합 제작자 살람 레미가 담당했는데 그는 스탠더드 재즈 곡으로 유명한 이 곡을 어셔에 어울리는 가벼운 R&B 곡으로 탈바꿈시켰다.
앨범은 희망을 느끼게 하는 경쾌한 리듬을 배경으로 자유에 대한 바람을 노래하는 니나 시몬의 ‘I Wish I Knew How It Would Feel to Be Free’로 끝난다. 그녀의 노래는 시간의 흐름이 주는 질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앞선 현대적 사운드와 잘 어울린다. 그래서 이 앨범이 니나 시몬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계기로 제작되었음을 상기시킨다. 나아가 불합리한 사회상을 외면하지 않고 노래와 행동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던 그녀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만약 당신 또한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What Happened, Miss Simone?>를 봐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이 다큐멘터리를 국내에서 제대로 볼 기회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