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주자 케틸 뵤른스타드와 첼로 연주자 스반테 헨리손의 듀오 앨범이다. 편성으로만 보면 과거 데이비드 달링과의 듀오 앨범을 연상시키지만 음악적인 면에서는 보다 더 멜로디가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앨범에서 케틸 뵤른스타드는 공간에 파장을 만들어 내는 담담한 왼손 연주에 멜로디를 슬쩍 숨긴다. 마치 수묵화를 그리듯 일부만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그 코드 속에 스며드는 멜로디를 스반테 헨리손의 묵직하고 건조한 첼로가 힘겹게 끄집어 내 공기 속을 부유하게 한다. 그것이 긴장과 조화를 이루며 비감을 만들어 낸다. 어떤 차분한 부동의 세계, 침묵의 세계를 그리는 사람이라면 이 앨범이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라 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유럽에 더 어울리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어떤 이국적 공간감이 우선일 지도 모르겠다. 그냥 클래식의 아류 정도로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울보다 속도가 조금은 느린-그네들은 그것도 빠르다고들 하겠지만-유럽의 한 도시의 목조 건물에서 이 앨범을 듣는다면 그것은 그대로 나를 감싸는 생활의 배경 음악으로 다가올 것이다. 가슴을 울리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멜로디가 더 오래된 역사의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앨범은 음악적으로 따진다면 재즈가 아니다. 뉴 에이지나 기타 연주 음악에 더 가깝다. 그럼에도 재즈 애호가들이 더 맘에 들어 할 것은 그 회백빛 침잠의 정서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장르적으로 모호하기에 어쩌면 더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미리 형성된 감각 틀을 벗어나는 음악이기에 논리적인 사고를 하기 전에 어리둥절해 하면서 감성적으로 먼저 음악을 듣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 경우 나중에 이 앨범은 재즈가 아니야라고 판단해도 그 음악적 평가를 가볍게 혹은 배타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남아 있는 것이 재즈의 인상적인 앨범으로 기억되는 것보다 더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