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멀리건의 황금 시대는 분명 1950년대 초였다. 당시 그는 쳇 베이커와 함께 피아노가 배제된 퀄텟을 결성해 보다 자유로운 솔로와 그의 바리톤 색소폰과 쳇 베이커의 트럼펫이 환상적인 조화로 단번에 (쿨) 재즈계의 스타로 부상했다. 이러한 쳇 베이커와의 조화는 1953년의 마약 사건-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쳇 베이커가 제리 멀리건에게 모든 것을 전가해 결국 6개월간 감옥 신세를 져야했다-으로 인해 깨지게 되고 이후 그는 트롬본 연주자 밥 브룩마이어와 새로운 조화를 이루며 50년대 후반을 보내게 되었다. 또한 솔로 연주자로서 폴 데스몬드, 애니 로스, 카운트 베이시, 스탄 겟츠, 텔로니어스 몽크 등 스타일에 상관 없이 많은 보컬이나 연주자들과 협연하였다. 한편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1948년부터 1950년에 걸쳐 녹음한 <Birth Of Cool>에 바리톤 색소폰 연주 외에 편곡에도 적극 참여하였고 쳇 베이커와 함께 활동하기 전 스탄 켄튼 오케스트라을 위해 몇 곡의 편곡을 하면서 독보적인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라는 명성 외에 솜씨 좋은 편곡자로서의 명성도 획득했다. (사실 이후 그의 활동을 엄밀히 따져보면 연주자로서의 면모보다 편곡자와 밴드의 리더로서의 면모가 강하다.)
따라서 1950년대는 제리 멀리건의 음악 인생에 있어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 50년대에 그가 녹음한 앨범들을 살펴보면 수작(秀作)이 더 많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의 활동은 화려한 50년대에 비해 다소 위축된 경향을 보였다. 이것은 하드 밥이 아방가르드적인 분위기로 발전하고 여기에 오넷 콜맨을 중심으로 프리 재즈가 득세를 했던 당시의 상황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수의 연주자들처럼 그가 활동을 멈추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프리 재즈가 등장해 최고의 위세를 떨칠 무렵이었던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콘서트 재즈 밴드’를 결성하여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려 했다. 이 콘서트 재즈 밴드는 필요에 따라 규모의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주로 11명의 관악기에 역시 피아노를 배제하고 베이스와 드럼만으로 리듬 섹션을 구성한 13인조 빅밴드 형태를 취했다. 그는 이 밴드를 통해 빅 밴드 시대의 화려한 편곡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현하려 했고 그것은 한편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Birth Of Cool>을 위한 9중주단의 확장적 성격을 띄었다. 이 밴드는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갈수록 활동 영역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앨범 <Night Lights>는 바로 이러한 상황, 콘서트 재즈 밴드가 서서히 시들어가고 재즈의 환경 변화 속에서 서서히 그의 활동 영역이 좁아들 무렵에 제작되었다. 따라서 그의 앨범 전체를 두고 볼 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이미 발매된 지 40년이 훨씬 지났으니 고전이라 할 수는 있겠지만 명반이라 하기엔 사실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러나 제리 멀리건의 활동을 시대별로 나누고 그 가운데서 대표 앨범을 꼽으라 한다면 이 앨범은 그의 60년대를 대표하는 앨범의 하나로 선정될 만 하다. 특히 대중적이라는 측면, 그리고 앨범에 흐르는 부드러운 정서를 중심으로 본다면 이 앨범은 분명 제리 멀리건의 전 음악 활동에 있어 한번쯤 들어봐야 하는 앨범이다. 사실 이 앨범이 다소 빈약한 제리 멀리건의 60년대 활동에서 주목 받는 이유도 음악적인 측면 이전에 앨범 전체에 흐르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다. 아마 제리 멀리건의 여러 앨범들 가운데 가장 달콤하고 나른한, 쿨 재즈의 정서적 매력을 제대로 표현한 앨범이 아닐까 싶다. 그 가운데 앨범의 타이틀 곡 “Night Lights”는 단연코 제리 멀리건이 남긴 곡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곡의 하나로 평가 받을 만 하다. 이 곡은 일러스트 형식의 앨범 표지에서 보이듯이 화려한 불빛과 창백한 하늘 그리고 그 밤의 정적의 사이로 고독이 흐르는 도시를 상상하게 하는데 그것이 1963년의 도시를 넘어 2000년대의 도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세련된 맛을 준다.
그런데 이 곡에서 제리 멀리건은 바리톤 색소폰이 아닌 피아노를 연주한다. 사실 피아노가 배제된 퀄텟 활동을 통해서 명성을 얻은 이후 그는 피아노를 되도록 편성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만약 필요하면 많지는 않지만 자신이 직접 연주하곤 했다. 이런 그가 이 곡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한 것은 다분히 정서적인 고려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그의 묵직한 바리톤 색소폰이 가세하고 피아노가 빠진 상태로 연주되었다면 곡의 정서는 너무 무겁고 건조한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실제 제리 멀리건은 솔로 연주를 제어하는 코드보다는 전체 분위기를 설정하는 테마 부분을 강조하는 피아노 연주를 펼친다. 그리고 이내 아트 파머의 트럼펫과 밥 브룩마이어에게 자리를 내준다.
한편 1984년 CD로 발매되면서 앨범에는 보너스 트랙으로 또 다른 “Night Light”가 실렸다. 이 버전은 1965년도 앨범 <Feelin’ Good>(Limelight)에서 “The Lonely Night”이라는 타이틀로 연주되어 수록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곡에서도 그는 그가 상정한 정서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바리톤 색소폰을 연주하지 않았다. 대신 바리톤 색소폰보다 훨씬 선명하고 가벼운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그리고 해리 블루스톤이 리드하는 10인조 스트링 오케스트라에 의해 밤의 적막감과 고독을 표현하게 했다.
결국 “Night Lights”는 제리 멀리건의 1960년대를 대표하는 곡이지만 그의 주악기인 바리톤 색소폰과는 상관 없는 곡인 셈이다. 또 그런 이유로 이 곡은 제리 멀리건이 오로지 작곡 단계에서부터 생각했던 도시의 쓸쓸한 밤의 이미지-스트링 섹션과 녹음한 1965년도 버전이 “The Lonely Night”임을 상기하자-를 표현하기 위해 연주보다 편곡과 전체 사운드에 더 집중했던 곡이라 할 수 있다.
앨범의 다른 곡들 역시 타이틀 곡처럼 밤의 고독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 결과 짐 홀(기타), 빌 크로우(베이스), 데이브 베일리(드럼)으로 구성된 리듬 섹션이 최대한 제어된 상태로 나타난다. 이 리듬 섹션은 정상적인 템포(가 있다면 그)보다 살짝 느린, 그래서 나른하게 늘어지는 듯한 템포로 사운드에 볼륨감만 부여할 뿐 절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한편 제리 멀리건의 바리톤 색소폰이 지닌 매력은 쇼팽의 곡을 연주한 “Prelude In E Mino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 곡에서 안개처럼 낮게 깔리는 톤으로 연주하며 늦은 밤의 나른함을 상상하게 한다. 밥 브룩마이어와 아트 파머 역시 이에 맞추어 최대한 건조하고 차분한 톤으로 연주한다. 한편 밤을 주제로 했음에도 앨범은 아침을 주제로 한 곡을 담고 있다. “Morning Of Carnival”과 “In The Wee Small Hours Of The Morning”을 연주했는데 그래서 앨범은 자정을 넘어 새벽의 정서를 느끼게 해준다. 반면 색소폰-트럼펫-트롬본의 솔로가 앨범에서 가장 활발한 “Festival Minor”는 아직 도시의 조명이 꺼지기 전의 흥겨움을 상상하게 해주며 “Tell Me When”은 타이틀 곡의 정서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준다. (보너스 트랙이 없었다면 이 곡이 앨범의 마지막 곡이 되었으니 일종의 주제 재현적 마무리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앨범 <Night Lights>에 담긴 고즈넉하고 쓸쓸한 정서는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던 제리 멀리건의 당시 상황이 반영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 이 앨범 이후 그의 활동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1968년부터 폴 데스몬드를 떠나 보낸 데이브 브루벡과 퀄텟을 이루어 활동했고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직접 쓰거나 신시내티 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색소폰 협주곡을 연주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아.. 외국인의 한국어 표기 얘기나오니까 배철수 아저씨가 생각나네요^^
저에겐..낯선청춘님의 외국인 연주자들의 한국어 표기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
ECM앨범을 좋아하는데, 누군가에게 얘기할 때 난감할 때가 많았거든요.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 문제는 해결이 안된 부분이 많아요. 국내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기에 먼저 관례화된 표현이 많아서요. ㅎ
아마도…라디오이지 싶은데.. 게리 뮬리건이라고해서 독일인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네요.
Night Lights와 Prelude in E minor가 정말 좋으네요.
Prelude in E minor는 버전이 다양한 걸로 아는데…
아오…Gerry Mulligan이 연주한 곡은..^^b. 특히 겨울에 좋은 것 같습니다!
게리 멀리건 제리 멀리건 사이에 이견들이 있지요. 외국어의 한국어 표기에는 이런저런 난점이 있습니다. 빌 에번스, 키스 재릿이 맞는데 빌 에반스, 키스 자렛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팻 메시니냐 팻 메스니냐 이것 가지고도 말이 많았던 기억이 나네요.ㅎ
제리 멀리건의 이 앨범은 흐릿한 느낌이 겨울을 많이 닮긴 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