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코 라바와 엔리코 피에라눈지의 듀오 앨범. 그리스 신화 속 인물 나우시카를 앨범 타이틀로 하고 있다. 아누시카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따르면 난파한 오디세우스를 구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두 명의 엔리코가-이들은 서로를 어떻게 부를까? 녹음 당시 관계자들은 이들을 어떻게 구별했을까?-함께 한 이 앨범은 오디세이아의 서사적인 면을 표현하려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첫 곡이 ‘나우시카의 노래’이긴 하지만 이후 연주된 곡들이 이 곡을 향해 모인다고 보이지 않는다. ‘L’age Mur 중년’같은 곡은 특히 엔리코 라바가 여기저기서 연주한 곡이지 않은가? 아무튼 신화와 상관 없이 이 앨범은 두 연주자의 하나됨이 좋다. 자기 식대로 연주하면서도 서로를 경청하는 분위기. 서로 무심한 듯 능숙하게 연결의 끈을 유지하는 분위기. 그렇기에 인위적으로 드러나는 여백마저도 꽉 차인 호흡(긴장)을 느끼게 된다. 여기엔 엔리코 피에라눈지의 명징한 피아노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엔리코 라바가 일체의 사건에 무심한 듯 몽환적이고 공간적인 연주로 일관할 때 그의 피아노는 이에 동적인 맛을 부여하고 또 색채감을 부여한다. 선배에 대한 그 식의 반응이 아닐는지.
Nausicaa – Enrico Rava & Enrico Pieranunzi (Egea 1993)
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