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One & Only Thrill – Melody Gardot (Verve 2009)

mg우리는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겠다는 꿈을 꾸고 그 목표를 위해 매진하곤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나는 내가 원하지 않은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아마 조금이라도 힘이 남은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힘을 내자’며 자신을 다독거리며 인생과의 힘든 싸움을 기획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삶의 목표가 확실한 사람의 경우일 뿐이다. 사실 우리들 가운데 상당 수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럴 때 나는 말하곤 한다. 때로는 삶의 파도가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산다는 것 차제가 아닌가? 이미 우리는 지금 이 길 위에 던져졌을 뿐이다. 그러므로 소진해버린 기회비용을 아쉬워하기 전에 묵묵히 앞만 보고 이 길을 가야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 온다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의 순간은 삶의 틀을 흔들만한 사건을 통해서 나타나곤 한다.

1985년 미국 뉴저지 출신의 여성 보컬 멜로디 가르도의 삶이 바로 그런 경우다. 그녀는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자신이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하리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16세의 나이로 피아노 바에서 아르바이트로 연주한 적이 있음에도 음악인의 삶은 그녀의 인생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필라델피아의 예술 대학에서 패션을 공부하며 이 분야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19세의 어느 날 한 사건이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불법 유턴을 하던 지프 자동차와 그만 충돌하고 만 것이다. 이 사고로 그녀는 골반, 척추 등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몇 달간 병원 침대에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누워있어야 했다. (지금도 그녀는 그 후유증으로 어두운 선글라스를 쓰고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다.)  더 심각한 것은 머리부분을 크게 다쳐 아침에 한 일을 저녁에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인식 능력이 크게 저하된 것이었다. 그래서 의사는 이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에게 직접 음악을 만들어 보는 음악 치료법을 제안했다. 바로 여기서 그녀 인생의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시작되었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그녀는 침대에 누워 곡을 쓰고 멜로디를 잊지 않기 위해 입으로 스캣하듯 흥얼거렸고 후에는 이를 휴대용 멀티트랙 녹음기에 녹음까지 했다. 그렇게 음악 치료법을 따르면서 조금씩 그녀의 인식능력은 회복되기 시작했고 또 그만큼 숨겨진 음악적 재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때까지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과 음악인으로서의 삶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 주변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었기에 침대에서 녹음한 몇 곡을 <Some Lessons>라는 타이틀의 EP로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이 EP 앨범은 다시 첫 앨범 <Worrisome Heart>의 발매로 이어졌는데 예상 밖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즈, 포크, 블루스를 자유로이 오가는 그녀의 음악과 노래에 내재된 고통을 치유하는 듯한 성숙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버브 레이블이 그녀와 계약을 맺고 독자적으로 발매되었던 앨범을 재발매 하여 세계 시장에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버브 레이블의 예상대로 첫 앨범 <Worrisome Heart>는 평단과 대중 모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여기까지 살펴본 그녀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 숨가쁘게 이어지는 드라마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삶의 파도가 이끄는 대로 따르다 보니 어느덧 재즈 보컬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녀 자신도 아마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어지러움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건 그녀는 재즈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두 번째 앨범이 중요하다. 첫 앨범이 다소 아마추어적인 입장에서 제작된 것이었기에 이번 두 번째 앨범은 진정한 전문 음악인으로서의 첫 앨범인 동시에 앞으로 그녀의 음악적 삶을 결정짓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상황이 특수하긴 했지만 대중을 생각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는 첫 앨범을 들으며 탄탄한 마니아 층을 지닌 싱어송라이터의 삶이야 말로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버브 레이블의 생각은 좀 다른 듯하다. 이번 두 번째 앨범을 들어보면 마음 먹고 그녀를 다이아나 크롤 이후 폭 넓은 사랑을 받는 보컬로 키우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고 멜로디 가르도의 개성을 무시하고 레이블이 원하는 대로 그녀를 짜 맞추려 했다는 것은 아니다. 대신 래리 클라인이라는 능력 있는 제작자를 붙여주고 제작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알려졌다시피 래리 클라인은 최근 허비 행콕과 마들렌느 페루의 앨범을 통해 연주자에 맞는 음악적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번 멜로디 가르도의 앨범의 경우 그녀가 직접 쓴 곡들을 함께 손을 보고 창법에 있어 비브라토의 사용 등 보다 재즈의 전통을 존중하도록 유도했으며 빈스 멘도사가 이끄는 오케스트라로 하여금 멜로디 가르도의 정서에 감상자가 동화할 수 있도록 이끌게 했다. 그 결과 첫 앨범이 포크, 블루스가 재즈와 공존하면서 개인적인 측면이 강했던 것에 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극적인 면이 강화된 사운드가 완성되었다.

이번 앨범에서도 멜로디 가르도는 혹시 교통 사고가 그녀의 작곡 능력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멜로디 감각들 드러낸다. 그런데 그녀가 만든 곡들은 크게 첫 앨범과 유사한 삶의 달관, 긍정, 받아들임이 느껴지는 담담한 곡들과 감정을 자제하지 않고 눈물이 나오는 대로 흘리며 노래한 슬픈 곡으로 나뉜다. 그 가운데 요즈음의 시대 정서를 따른 포근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Baby I’m A Fool’이 타이틀 곡으로 홍보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이 앨범의 백미는 슬픈 곡들에 있다. 주로 앨범의 후반부를 장식하고 있는 이 곡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에게 다가온 발라드 곡들 가운데 가장 슬프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감상자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가운데 ‘The Rain’, ‘My One And Only Thrill’, ‘Deep Within The Corners Of My Mind’로 이어지는 후반 삼부작은 빌리 할리데이가 1958년 <Lady In Satin> 앨범에서 들려주었던 슬픔에 비교할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눈물로 앨범이 마감되었다면 편안함, 행복한 결말에 관심이 더 많은 요즈음의 감상 경향에 그다지 맞지 않아 대중성이 감소되었을 지도 모른다. 멜로디 가르도나 래리 클라인도 이를 의식했던 모양이다. 마지막 곡으로 담백한 기타 반주와 브라질리언 리듬이 화사한 무지갯빛 햇살과도 같은 희망의 정서를 이끌어 내는 ‘Over The Rainbow’를 배치함으로써 슬픔의 늪에서 감상자를 구하도록 했다. 그래서 극도로 슬픈 분위기의 ‘Deep Within The Corners Of My Mind’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하는 ‘Over The Rainbow’로 넘어가는 부분에서는 짜릿한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섣부른 판단이라 할 수 있지만 멜로디 가르도의 이번 앨범이 홀 해의 앨범 가운데 한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앨범 자체의 정서적 흡입력과 버브 레이블의 전폭적 지원을 비추어볼 때 이 앨범을 통해 그녀가 다이아나 크롤 이후 재즈 보컬을 책임질 대형 스타로 자리매김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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