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극적인 음악 인생을 살다간 인물들은 그 이력에 하나 이상의 단절-전체건 부분이건-의 순간을 지닌다. 재즈 역사가 몇 차례의 단절을 걸쳐 변화를 한 것처럼 말이다. 존 콜트레인도 몇 차례 단절의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1960년, 특히 이 <My Favorite Things>가 가장 큰 단절의 순간으로 기록되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어떤 단절일까? 그것은 여러 방면으로 이해가 가능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비밥의 시대를 넘어 아방가르드 시대로의 이행으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 위해서는 존 콜트레인이 1년 전에 녹음했던 <Giant Steps>(Atlantic 1959)을 먼저 언급해야 겠다. 사실 순서상 고전의 재 발견에서 먼저 다루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한데 아무튼 그는 이 앨범에서 무한한 코드 변화와 그 위를 자유로이 유영하는 빠른 속주로 비밥 연주의 극한, 더 이상 비밥식 연주는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연주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마침 <Giant Steps>를 녹음할 무렵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Columbia 1959) 녹음을 병행하고 있었다. 알려졌다시피 <Kind Of Blue> 앨범은 모드를 사용한 모달 재즈의 시발적 연주를 담은 앨범이다. 존 콜트레인은 바로 이 세션에서 마일스 데이비스가 사용한 모달 주법의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떴다. 그래서 1년 뒤 1960년 10월 앨범 <My Favorite Things>을 녹음하면서 그만의 방식으로 모달 주법을 도입한 연주를 선보이게 되었다.
모달 재즈?
그렇다면 모달 재즈란 무엇인가? 비밥과 다른 새로운 사조인가? 정확히 말하면 모달 재즈는 사조로 이해하기에는 그 세력이 약했고 연주 방식으로 보았을 때도 비밥의 한 지류로 위치시키는 것이 더 옳지 않나 싶다. 아무튼 모달 재즈는 모드를 기본으로 한 주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이 모드 주법은 기존의 연주 방식이 코드의 변화를 중심으로 연주를 발전시켰던 것과 달리 모드(혹은 스케일)를 중심으로 한 연주를 추구한다. 다시 말해 코드 중심의 연주는 예로 도-미-솔로 이루어진 C코드가 등장할 경우 솔로의 멜로디 역시 C코드의 기본음 도-미-솔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제약이 있었다. 그래서 멜로디 패턴이 수직적인 면이 강했다. 그러나 스케일이란 음들의 체계, 예를 들어 C음(도)을 기본으로 하는 경우 1:도-2:레-3:미-4:파-5:솔-6:라-7:시-8:도로 이루어진 음들의 체계-3번째 음(미)과 4번째 음(파)의 간격, 그리고 7번째 음(시)과 8번째 음(도)의 간격이 반음이고 나머지 음들의 간격은 온음으로 이루어진 체계를 기반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D음 레를 기본으로 한 도리안 모드의 경우는 1:레-2:미-3:파-4:솔-5:라-6:시-7:도-8:레로 이루어진 음의 체계, 즉 2번째 음(미)과 3번째 음(파)의 간격, 6번째 음(시)과 7번째 음(도)사이가 반음이고 나머지 음들의 사이는 온음인 새로운 체계를 기반으로 연주해야 한다. 따라서 이 모드를 기반으로 연주한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체계와는 다른 체계를 기반으로 연주하는 것이기에 그 음악적 분위기는 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방식의 구성으로 음들을 조합한 모드를 기반으로 한 연주는 기존 코드 중심의 연주에 비해 음들의 선택 폭이 확연하게 넓어지는 장점이 있다. 즉, 모드의 모든 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코드 자체가 의미 없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하나의 모드를 기반으로 한 연주는 코드 하나만 필요하게 된다. 만약 코드의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코드의 변화가 아니라 모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주: 이에 대해서는 나의 졸저 <재즈>(살림 출판사 2004)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래서 모드 중심의 솔로는 수평적인 느낌이 강하고 나아가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발전하는 서사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런데 존 콜트레인은 이런 모달 주법을 단지 솔로 연주 표현의 확장 가능성의 차원에서만 바라본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의 모달 주법 연주는 서양 음악사에 존재하는 모드 가운데 하나를 사용했다기 보다 인도나 아랍의 전통적 분위기가 더 많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 이 앨범을 발표할 무렵 그는 아시아의 음악 양식에 큰 관심이 있다고 밝히곤 했다.
한편 존 콜트레인이 이런 모달 주법을 사용하게 된 것은 이후에 구체적으로 발전된 영적인 면이 반영된 자신만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그는 한 인터뷰에서 각 나라마다 독특한 모드가 존재하며 이 모드들은 스타일의 차이를 넘어서면 공통점을 지닌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중적 인기
앨범 <My Favorite Things>는 대중적으로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발매 당시 5만장이 팔렸다고 하는데 당시가 5천장이면 성공작으로 인정 받던 시대였다고 하니 이 판매량은 실로 놀라운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새로운 양식에 대해 1차적으로 거부감부터 표현한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보다 진보적 성향의 연주를 담고 있는 이 앨범이 인기를 얻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적인 일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타이틀 곡 “My Favorite Things”의 멜로디 자체가 지닌 대중성 때문이었다. 알려졌다시피 이 곡은 뮤지컬 <Sound Of Music>의 대표곡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곡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감상자들은 이 곡에 대해 친근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존 콜트레인이 모드를 기반으로 한 멜로디 중심의 연주를 펼쳤기 때문에 기존 4분의 3박 대신 8분의 6박을 사용하고 인도나 아랍의 분위기를 집어넣는 등의 그 진보성과 상관 없이 대중적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1년 전에 발표했던 앨범 <Giant Steps>의 변화무상한 코드 변화와 “Sheets Of Sound”라 불리곤 하는 동시에 여러 음을 연주하는 듯한 빠른 속주를 생각하면 “My Favorite Things”에서의 선명한 멜로디 중심의 솔로는 감상이 너무나 쉬웠을 것이다.
클래식 퀄텟
한편 이 앨범은 최초로 존 콜트레인의 정규 퀄텟, 보통 클래식 퀄텟이라 불리는 퀄텟 편성으로 녹음된 앨범이기도 하다. 사실 재즈가 여러 연주자들의 순간적 이합집산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막상 역사를 살펴보면 주요 앨범들은 고정된 밴드로 녹음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좋은 예가 존 콜트레인이 속해 있던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이다. 존 콜트레인 역시 클래식 퀄텟을 결성하면서 뛰어난 음악적 결과를 낳았는데 바로 이 앨범이 바로 그 시작이었다. 이 클래식 퀄텟은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을 중심으로 맥코이 타이너의 피아노, 엘빈 존스의 드럼. 그리고 스티브 데이비스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퀄텟은 맥코이 타이너 이전에 백인 피아노 연주자 스티브 쿤이 잠깐 활동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베이스 연주자의 경우 콜트레인의 음악적 변화에 따라 스티브 데이비스에서 아트 데이비스, 레지 워크맨을 거쳐 지미 게리슨으로 고정되었다. 아무튼 이 앨범부터 존 콜트레인은 자신만의 퀄텟을 가지고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음악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실제 이 앨범의 주요 감상 사항에는 탄탄한 호흡으로 쉴 새 없이 전진하는 퀄텟의 조화로운 힘도 포함된다.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하다
한편 앨범 <My Favorite Things> 앨범부터 존 콜트레인은 주 악기였던 테너 색소폰 외에 소프라노 색소폰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앨범을 녹음하기 몇 달 전에 녹음했던 <Avant Garde>앨범에서도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했다. 그러나 이 앨범은 한참 후인 1966년에 발매되었다.)사실 재즈 초기 시드니 베셰가 소프라노 색소폰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색소폰은 테너와 알토 색소폰(그리고 간헐적으로 바리톤 색소폰)이 대세였다. 이렇게 소프라노 색소폰이 사용되지 않았던 것은 당시까지 소프라노 색소폰 특유의 고음이 전체 사운드 내에서 부조화를 일으킨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드니 베셰 이후 소프라노 색소폰은 재즈에서 잘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영적인 연주에 관심이 많았던 존 콜트레인은 소프라노 색소폰이 지닌 신비하고 명상적인 음색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소프라노 색소폰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존 콜트레인이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한 이후 많은 동료 및 후배 연주자들은 새삼 소프라노 색소폰에 관심을 갖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마라톤 세션의 하나?
사실 이 앨범의 타이틀 곡 “My Favorite Things”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분명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지만 기존 존 콜트레인의 사운드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Everytime We Say Goodbye”의 서정적 연주를 비롯하여 “Summertime”, “But Not For Me” 등의 곡은 보다 멜로디 중심적이긴 하지만 기존 비밥의 양식에 충실한 평이한 연주를 들려준다. 따라서 이 앨범은 존 콜트레인이 아방가르드 세계로의 첫 발을 내디딘 앨범이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아방가르드 재즈를 담고 있는 앨범이라 말하기엔 곤란하다. 실제 존 콜트레인은 “My Favorite Things”의 연주에서만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지 앨범 자체에 대해 새로운 무엇을 담아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이 앨범이 일종의 마라톤 세션의 일부라는 사실로 유추 가능하다.
존 콜트레인은 이 앨범을 1960년 10월 21(My Favorite Things)과 24일(Everytime We Say Goodbye), 26일(Summertime, But Not For Me) 3일에 걸쳐 녹음했다. 그런데 10월 24일과 26일에 그는 다른 여러 곡들을 함께 녹음했다. 그래서 나머지 곡들은 <Coltrane Plays The Blues>와 <Coltrane’s Sound>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결국 1960년 10월 21일에 “My Favorite Things”만을 녹음할 때 그는 새로운 연주를 시도했고 나머지 10월 24일과 26일 연주에서는 기존 비밥식 연주를 다시 사용했다고 할 수 있겠다.
명연주 명음반 감사드려요
고맙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