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역사를 다룬 책들을 보면 비밥과 쿨 재즈가 저마다의 개성으로 아주 명쾌하게 분리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런 저런 1950년대 앨범을 듣다 보면 그처럼 명확하게 분리 될 수 없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이 그렇다. 대부분의 그의 재즈에는 뜨거움과 냉랭함이 공존한다. 쿨-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사운드다. 그렇다고 마일스 데이비스가 노선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았다고 책망할 필요는 없다. 사실 비밥과 쿨 재즈는 발생에 시간차가 있기는 하지만 1950년대의 상당 기간 동안 공존했다.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작, 편곡이 강조된 우아한 분위기의 쿨 재즈, 혹은 웨스트 코스트 재즈가 있었다면 다른 쪽에서는 펑키한 리듬과 진중한 솔로가 강조된 하드 밥 사운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연주자들은 어느 하나를 고집하지 않고 이 두 유행을 자유로이 오가면서 연주활동을 했다. 모던 재즈 퀄텟(이하 MJQ)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MJQ는 쿨 재즈와 여기서 발전된 “제 3의 흐름”의 주요 밴드로 기억되고 있지만 실제 이들의 음악은 우아한 쿨 재즈와 장중한 하드 밥의 요소가 공존한다.
이것은 MJQ의 창단 멤버인 밀트 잭슨(비브라폰), 존 루이스(피아노), 케니 클락(드럼)이 1946년부터 1950년까지 디지 길레스피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활동했었다는 것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이 세 멤버는 레이 브라운(베이스)과 함께 퀄텟을 이루어 초고역대의 연주를 펼치느라 지친 디지 길레스피에게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공연 도중 따로 연주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그래서 1951년에는 밀트 잭슨 퀄텟의 이름으로 녹음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52년 레이 브라운 대신 퍼시 히스가 베이스를 연주하게 되면서 MJQ의 역사가 시작되게 되었다.
한편 결성 당시 MJQ는 밀트 잭슨과 존 루이스의 공동 리더 체계로 운영되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초기 MJQ의 사운드에 유달리 하드 밥과 쿨 재즈의 요소가 공존했던 것은 이 두 연주자의 음악적 개성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존 루이스의 기본 성향은 음악은 디지 길레스피 밴드 출신인 만큼 뜨거운 연주에도 능했지만 그보다 쿨 재즈나 “제 3의 흐름”에 더 가까웠고 밀트 잭슨은 하드 밥에 더 친화적인 면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밀트 잭슨의 대표곡“Bag’s Groove”와 존 루이스의 대표곡 “Django”는 두 연주자의 음악적 차이를 잘 대변한다.
그 가운데 1956년에 발매된 앨범 <Django>는 재즈사를 빛낸 고전인 동시에 MJQ의 초기 활동을 증명하고 대표하는 명작이다. 실제 이 앨범을 끝으로 케니 클라크는 밴드를 떠났다. (이후부터는 코니 케이가 드럼을 연주하게 된다.)
앨범은 타이틀 곡인 “Django”로 시작한다. 앨범에서 가장 특색 있는 이 곡은 선천적 손가락 장애를 극복하고 집시 재즈를 개척했지만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기타 연주자 쟝고 라인하르트를 위해 존 루이스가 작곡한 추모곡이다. 쟝고 라인하르트의 사망 시기(1953년 5월 16일)와 앨범 수록곡들이 녹음된 시기를 비교해 보면 쟝고 라인하르트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존 루이스는 이 곡을 작곡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존 루이스는 직접적으로 쟝고 라인하르트의 집시 재즈를 따르지는 않았다. 쟝고 라인하르트의 음악이 역동적인 리듬으로 기타를 중심으로 집시적 우수와 낭만을 그려냈다면 눈시울을 적시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비장한 멜로디와 차분한 미디엄 템포의 솔로로 이루어진 존 루이스의 “Django”는 사색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데 왜 존 루이스는 미국인도 아닌데다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을 했던 쟝고 라인하르트를 주모하려 했을까? 여기에는 그가 2차 대전 기간 중에 프랑스에서 군생활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쟝고 라인하르트와 그의 음악을 알게 되지 않았나 싶다. 역시 존 루이스가 작곡한 앨범의 또 다른 수록곡 “Delaunay’s Dilemma”가 쟝고 라인하르트가 활동한 Hot Club De France 밴드를 결성한 프랑스의 재즈 평론가 찰스 들로내이를 주제로 한 것임을 생각하면 이런 의심은 설득력이 있다.
한편 많은 감상자들은 앨범 타이틀이 “Django”이고 또 그 타이틀 곡이 너무나도 인상적인 나머지 앨범 전체가 쟝고 라인하르트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사실 이 앨범은 1953년 6월, 1954년 12월, 1955년 1월에 걸쳐 녹음한 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수록곡들은 1953년 녹음과 1954년, 1955년 녹음으로 나뉘어 이미 두 장의 10인치 앨범-지금으로 치면 EP-으로 발매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 앨범을 발매한 프레스티지 레이블이 뒤늦게 12인치 LP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새로 묶이게 된 것이다. (앨범 발매가 코니 케이가 참여한 <Concorde>(Prestige 1955)보다 늦게 이루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앨범은 처음부터 쟝고 라인하르트를 위한 추모라는 하나의 확고한 목표를 두고 제작된 앨범은 아닌 것이다. 실제 수록곡 가운데는 쟝고 라인하르트(와 그와 관련된 찰스 들로내이) 외에 MJQ의 대부분 멤버들을 만나게 해준 디지 길레스피를 위한 곡도 있다. 바로 “La Ronde Suite”가 그 곡인데 9분 30여초 동안 각 멤버들이 순서대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이 곡은 사실은 디지 길레스피 작곡의 “Two Bass Hit”의 테마를 변용한 곡이다. 이 곡은 앞서 연주되는 역시 디지 길레스피 작곡의 “One Bass Hit”와 함께 디지 길레스피에 대한 MJQ의 애정을 나타낸다.
이 앨범을 통해 MJQ가 선보이는 사운드는 밥적인 요소가 가미된 쿨 재즈로 정의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동시대의 다른 연주자들과 구분되는 MJQ만의 개성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것은 무엇보다 섬세하고 세련된 편곡에서 잘 느낄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쿨 재즈 곡들은 스윙 시대를 기초로 한 방식에 의해 편곡되었다. 그러나 평소 클래식 음악에 관심과 조예가 깊었던 존 루이스는 당시로서는 매우 색다르고 참신한 방식의 편곡을 시도했다. 즉, 바하를 중심으로 한 바로크 클래식 음악에서 쉽게 발견되는 푸가를 포함한 대위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대위법이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데에는 편성 자체의 독특함도 한몫 했다. 즉 서로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비브라폰과 피아노가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 두 악기는 대위법의 활용으로 인해 자칫 겹쳐져 혼잡스러울 수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잘 정돈된 형태로 드러난다. 하나가 되어 대화하고 서로를 꾸며주는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다. 사운드가 깔끔하고 우아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MJQ는 케니 클락이 빠지고 코니 케이가 드럼을 연주하면서 본격적인 전성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Django>를 원형으로 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타이틀 곡 “Django”는 MJQ를 대표하는 곡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따라서 MJQ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앨범 <Django>를 제일 먼저 감상해야 할 것이다.
존 루이스의 바흐 앨범을 매우 좋아합니다. 출퇴근길, 집..이 앨범을 알게 된 순간 암튼 장소 가리지 않고 한동안 이것만 들었던 것 같아요. ‘비브라폰과 피아노가 함께 있었기에’..이 말씀에 깊이 동감합니다. 재즈스페이스에서 별5개 나오기 힘든데..ㅋㅋ 이 앨범은 물론이고 존 루이스 연주앨범을 들으시면 이 포스팅이 더 깊게 와닿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랜 만입니다. 별 다섯개는 나올 수 있습니다. 용기가 필요하죠.ㅎ
그렇지 않아도 쟝고 라인하르트가 5월에 세상을 떠났기에 존 루이스의 장고를 주제로 글을 하나 섰었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