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os – Paolo Fresu (BMG 2000)

pf파올로 프레주는 한국의 재즈 애호가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상당한 지명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트럼펫 연주자이다. 이번이 그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앨범 중에 17번째라고 하니 유럽에서의 그의 활동이 얼마나 활발한지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들려주었던 연주에는 언제나 서정이 깃들어 있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의 합작 그룹 Palatino에서 활동할 때나 알도 로마노의 밴드에서 연주를 할 때나,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연주자들의 앨범에서 사이드 맨으로 연주할 때나 그의 트럼펫소리는 유난히 부드럽고 달콤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감상할 수 있었던 <Angel>(BMG 1998)같은 그의 전작들에서는 이 서정이 긴장과 섞여있었다. 스스로는 특유의 서정을 유지하면서 다른 연주자의 연주에서 발산되는 긴장을 거부하지 않는 음악을 들려 주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는 긴장이 없다. 내 생각으로는 그가 자신의 소리만을 생각하고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이전의 앨범에서 다른 축을 이루었던 누옌 레같은 연주자의 카리스마를 대신하는 연주자가 이번 앨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의 뮤트된 트럼펫을 통해서 섬세하게 다듬어진 서정과 우아한 시성만이 들릴 뿐이다. 약간은 어둡고 적당히 따뜻한-분명 뮤트 트럼펫의 소리는 차가움에도- 공간이 이 앨범을 감싸고 있다.

이런 서정성이 강조되는 것은 그의 연주가 멜로딕한 것에 기인한다. 이 앨범에서 파올로 프레주는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솔로는 쌓는다거나 건축한다기 보다는 연결하고 펼쳐 나가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여기엔 그다지 많은 음들이 한꺼번에 사용되지 않는다. 어느새 40대가 되어버린 그의 나이 때문일까? 한편 그의 연주를 듣다보면 마일스 데이비스의 뮤트 트럼펫과 솔로가 생각나기도 한다.

한편 이런 서정과 멜로딕한 면은 앨범을 자칫 단순한 발라드 앨범으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는데 이런 우려에 대해 프레주는 편곡을 통해서 해결해 나가고 있다. 새를 트레네의 노래로 유명한 ‘Que reste-t-il de nos amours’의 전주처럼 가장 익숙한 주요테마 부분을 자신의 멜로디로 바꾸어 버린다거나 ‘Luiza’를 비롯한 보사노바 음악의 대명사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두 곡을 보사노바가 아닌 이탈리아적인 향수로 포장을 하는 등 단순한 발라드로 쉽게 생각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그와 함께하고 있는 연주자들은 자신의 에고를 드러낸다기 보다는 파올로 프레주의 연주를 최대한 뒷받침하는 쪽의 연주를 들려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로베르토 시펠리의 피아노 연주는 주의 깊게 들어볼 만하다. 잘하고 못하고의 차원이 아니라 파올로 프레주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의 완급을 이 피아니스트가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녹음상으로 보아도 이 앨범이 파올로 프레주 개인에게만 초점이 맞추어 있음을 쉽게 발견한다. 악기들의 공간적 위치가 모두 트럼펫 뒤에 정해져 있다. 어쩌면 프레주의 트럼펫과 같은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었을 티노 트라카나의 색소폰마저 약간 뒤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트럼펫과 다른 악기간의 거리는 최대한 벌여놓은 듯한 이미지로 공간감을 만들어 내면서 다른 악기들은 밀집해 놓아 트럼펫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트럼펫에만 아주 긴 잔향을 준 것에 기인한 듯하다. 이로 인해서 가냘픈 트럼펫이 차지하는 실제 공간은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생각에 이 앨범이 파올로 프레주에게 있어서 최고의 앨범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의 나머지 앨범을 다 들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언급을 한다는 것은 오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지금까지 그의 이런 저런 연주를 들어본 것 중에선 이 앨범이 그의 음악적 색깔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냥 아름다운 배경음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나 진지하게 스피커 앞에서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나 이 앨범은 일정량의 만족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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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프레주는 한국의 재즈 애호가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상당한 지명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트럼펫 연주자이다. 이번이 그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앨범 중에 17번째라고 하니 유럽에서의 그의 활동이 얼마나 활발한지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들려주었던 연주에는 언제나 서정이 깃들어 있었다....Melos - Paolo Fresu (BMG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