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트뤼파즈가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사실 그가 일렉트로 재즈의 개척자의 하나로 꼽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스타일에 약간의 회의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까지 세인이 주목하는 이유를 내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또 그만큼 그의 음악적 노선이 불완전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가히 충격적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감상하는 재미는 물론이고 그 완성도 또한 아주 뛰어나다. 이제서야 트뤼파즈의 진가가 무엇인지 알 것같다.
무엇보다 이 앨범에는 단절과 융합이 공존하고 있다. 여기서 단절이란 자신의 이전 앨범과 과감하게 단절을 했다는 것이고 융합이란 동시대 다른 일렉트로 재즈 연주자들의 방법과 사운드를 포괄한 사운드를 이루어 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단절과 융합은 독립된 성격으로 앨범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인과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단절의 시작은 멤버의 교체에서 출발한다. 일단 랩을 담당했던 니아(Nya)가 사라졌다. (이것은 미국 시장을 겨냥한 포석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 앨범의 미국 발매시 미국인들이 랩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랩이 빠진 편집반이 발매되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셀 베니타같은 부드러운 톤의 베이스 연주자가 참여했다는 것도 놀라움의 하나다. 의외로 편성에서 이전까지 에릭 트뤼파즈의 사운드 형성에 큰 핵심이었던 파트릭 뮐러의 키보드가 빠졌다. 대신 마뉘 코디자의 기타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데 이로 인해 사운드의 질감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 마누의 기타는 굳이 비교한다면 누옌 레와 비교할 수 있겠다.
이렇게 키보드를 기타로 교체 함으로서 생긴 변화는 의외로 북유럽의 동료들의 사운드와 아주 가깝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 닐스 페터 몰배의 음악에는 기타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그리고 부게 베셀토프트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가 제작한 시젤 엔드레센의 <Travelling Still>(Jazzland 2000)을 에로 들면 기타가 전체 사운드를 조율하고 있음이 발견된다. 이런 북유럽 사운드의 특징은 차가움이고 그로 인한 공간감인데 이 앨범에서도 그런 북유럽 스타일의 사운드가 강하게 드러난다. 한편 ‘Magrouni’같은 곡에서 무니르 트루디(Mounir Troudi)라는 보컬을 초빙하여 부분적이지만 아랍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것에서도 몰베의 방법론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행콕의 최근 앨범에서도 발견된다.)
이런 북유럽 스타일의 사운드를 그렇다고 에릭 트뤼파즈가 무조건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그의 음악은 편성과 상관없이 어쿠스틱적인 면을 띄고 있었다. 이것이 그의 정체성이고 스타일이다. 이 앨범에서도 이런 부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것이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 바로 침묵의 활용일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나 쳇 베이커 등의 선배 트럼펫 주자들의 영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그의 트럼펫 연주는 적은 음으로 여백과 침묵을 활용하는 면을 보인다. 특히 아누아 브라헴을 초빙해 듀오로 연주하는 ‘Nina Valeria’같은 곡에서 이러한 침묵과 공간의 활용이 잘 드러난다.
그런데 악기 편성을 보면 전자 악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연주 후 닐스 페터 몰배처럼 과감한 필터링을 가하는 경우도 없다. 그렇다면 이 앨범을 일렉트로 재즈의 연장선상에 놓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사운드를 보면 분명 일렉트로 재즈의 분위기가 편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필립 가르시아의 드럼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의 드럼은 어쿠스틱적인 감각으로 에릭 트뤼파즈의 부드러운 차가움을 감싸는 동시에 리듬을 거칠면서도 기계처럼 정확히 연출해낸다. 아니 기계같다는 표현보다는 리듬박스가 무색할 정도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여기에 멜로딕한 에릭 트뤼파즈의 연주와는 달리 곡들이 악보보다는 사운드 자체에서 출발해 분절 가능한 소리조각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지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커다란 전자 악기나 효과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다른 어떤 앨범보다도 일렉트로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즉, 일렉트로 재즈는 전자 악기의 사용이 아니라 사운드의 활용 방법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앨범에 일렉트로 재즈의 에티켓을 부가한다면 이 앨범으로 인해 일렉트로 재즈는 현 시대의 음악 코드를 결합한 시대의 산물에서 벗어나 역사성을 지니게 된다. 왜냐하면 기타의 음색이나 사운드를 놓고 볼 때 마일스 데이비스의 <In A Silent Way>(Columbia 1969)등의 앨범으로 시작된 Rock Jazz와 만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마일스 데이비스의 선지자적 능력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즉, 비슷한 시기에 일렉트로 재즈 앨범을 발표한 허비 행콕이 일렉트로 재즈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면 에릭 트뤼파즈는 그 기원을 더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 에릭 트뤼파즈에게 있어서 일렉트로 재즈라는 에티켓은 무의미할 지도 모르겠다. 그가 아직 이 호칭을 인식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세간의 정의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것을 이 앨범을 통해서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 앨범으로 이제 그는 확고한 스타일리스트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단언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