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 마리 마샤도가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은 피아니즘을 극대화하는 쪽에 치우쳤었다. 그래서 과거 빌 에반스가 했던 것에서 생각을 얻어 자신에 맞게 조율한 총 7대의 피아노를 오버 더빙을 통하여 연주를 하는가 하면 키스 자렛에게 헌정하는 곡을 만들어 연주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쟝 마리 마샤도의 작업들이 선배들을 단순히 따라하는 것은 아니었다. 선배들에게 음악적으로 빛을 지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프랑스 내에서 무시하지 못할 독특한 피아노 연주자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그가 오랜만에 리더로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 앨범의 제목’ Lyrisme’를 보고 어떤 감상자는 서정이라는 말에 어떤 기대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 서정으로 번역이 되지만 서정이라는 말만큼 리리즘이라는 원어도 평론계나 일반 문학계에서 상당히 사용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리리즘이라는 말을 단순히 서정에 연결하기엔 어딘가 부족한 면이 있다. 그것은 서정이 감상적인 부분을 보다 더 많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서구에서 리리즘이라 하면 서정적임은 물론이고 자못 시적인 면도 함께 들어 있음을 뜻한다. 이렇게 말꼬리를 잡고 시간을 끄는 이유는 앨범에 담긴 음악이 우리의 서정에 맞는 애상적 분위기가 기조를 이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서구식 리리즘을 표현하려한 앨범이다.
그러나 그 표현의 결과에 대해서는 애매한 부분이 드러난다. 참여한 연주자들의 연주나 그들간의 호흡의 문제는 아주 훌륭하다. 개별성을 유지하면서도 음악속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면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완벽함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허전함이 든다는 것이다. 잘 된 연주라고 할 수는 있어도 잘 표현된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심심하다. 아주 중요한 양념이 빠졌다. 그것은 바로 리리즘의 표현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감정을 파고드는 면을 보여주어야 할텐데 이들의 연주는 그저 매끄럽게 흐르려고만 한다. 마샤도의 작곡에 연주자들의 해석은 1차적인 부분에 그쳤다.
쟝 마리 마샤도의 이전 앨범과 비교한다고 해도 보다 다이나믹 레인지가 넓어진 풍부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지만 이전의 상대적으로 투박한 사운드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입체감은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공간을 보다 적게 설정했다면 더 좋은 느낌이 나오지 않았을지. 보다 밀도감을 줌으로 해서 전체적 분위기를 더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했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연주적으로 본다면 쟝 마리 마샤도의 존재가 보다 더 직접적으로 드러났었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역시 음악은 연주력이 모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