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 Winter를 통해서 발표되고 있는 클래식을 지금의 음악(문화들)과 관련을 맺어 나가는 유리 케인의 음악들은 어떤 정점을 상정하고 그 정점을 향해서 나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첫 번 째 시도였던 말러의 음악과 현대 재즈와의 결합이나 바그너의 음악을 독특한 실내악 구성으로 재현하려 했던 것들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현재 그 결말로 생각되는 것이 이 앨범과 약 3개월의 시간 차를 두고 녹음된 <Goldberg>(Winter & Winter 2000)일 것이다.
슈만을 주제로 한 이 앨범에서 유리 케인이 중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슈만의 음악이 지닌 음악적 정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현대성을 섞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의도는 이전의 앨범들이 편곡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졌던 것과는 달리 앨범의 기획자적인 위치에서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이 앨범은 연주 자체에 대한 미시적 관점에서의 감상보다는 각 곡들의 유기적 연결등 앨범의 구조에 대한 거시적 관점에서의 감상을 요구한다. 이것은 우선 유리 케인 앙상블 외에 라 가이아 시엔자(La Gaia Scienza)라는 클래식 퀄텟이 등장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앙상블은 사실 이미 같은 라벨에서 슈베르트의 실내악 연주로 호평을 받은 바도 있는, 유리 케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순수한 클래식 연주 퀄텟이다. 유리 케인은 이 퀄텟에게 슈만의 ‘Piano Quartet op.47’을 연주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Dichterliebe op.48’을 앙상블에 맞게 편곡하여 연주하고 있다. 이 곡들은 자체로서의 완결성을 지닌다기 보다는 전후 연결을 통해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비록 라 가이아 시엔자의 연주가 클래식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하지만 이 앨범에 각 악장이 분리 배치되어 새로운 층위의 의미를 띈다. 이렇게 함으로서 라 가이아 시엔자가 연주한 피아노 퀄텟은 해체되어 원 텍스트성을 잃고 이 곡들을 배치한 유리 케인의 관점이 그 위에 부여된다. 연주에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으면서 그 음악에 자신의 영향력을 부여하는 이런 방식은 현대 테크노 DJ나 편집 음반 기획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이런 배치를 통한 새로운 의미의 창조는 편집 기술을 음악적 행위로 편입시킨다. 즉, 마스터링 과정에서 각 곡들 사이에 휴지를 두지 않고 크로스오버 페이드를 통하여 접목함으로서-몇 군데는 교차가 좀 부자연스럽기도 하다.-각 곡들의 관계를 보다 더 강조하는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바로 이런 점들이 유리 케인이 단순히 슈만의 음악을 편곡하고 그것의 연주를 통해서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려 했다기 보다 음반 전체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두 스타일의 연주는 묘한 긴장관계를 연출해내고 있다. 그것은 비록 원곡자가 슈만이지만 실제 두 그룹의 연주가 들려주는 사운드가 일종의 시간차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피아노 퀄텟이 슈만 당시의 시간을 반영하고 있다면 유리 케인의 편곡에 의해 연주되는 ‘Dichterliebe’의 울림은 매우 현대적이다. 여기엔 슈만의 곡을 하나의 선율로 축소하고 나머지는 코드화한 유리 케인의 편곡 자체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데이빗 길모어의 몽환적인 기타가 주된 이유라고 본다. 그의 선율적인 기타 연주는 잔향을 이용해 공간감을 연출하는 첼로 연주자 데이빗 달링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매우 능숙하게 공간을 파고들고 있다.
한편 유리 케인 앙상블에 등장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관심있게 들어볼 필요가 있는데 특히 작은 오페라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마크 레드포드의 보컬이 매우 훌륭하다. 슈만이 개인적인 감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던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인물임을 감안할 때 마크 레드포드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보컬이 그런 점을 반영한다고 본다. 노래하는 보컬 외에 시낭송이 들어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특히 일본어 나레이션이 들어 있다는 것이 의외다.-그 내용이 무척 궁금하다.-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전체 사운드 음반 자켓등에서 서양입장에서 바라본 동양의 신비주의가 살짝 엿보이기도 한다. 한편 이런 보컬은 앙상블이 지닌 현대적 울림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으면서도 피아노 퀄텟과의 공간차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
이 앨범은 이미 1999년 같은 라벨에서 <Tin Pan Alley: The Sidewalks Of New York>을 통해 드러냈던 앨범 차원에서의 사고를 한단계 발전시킨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후의 <Goldberg>의 전조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