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보통 순간의 음악이라고 한다. 그만큼 재즈가 즉흥성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솔로 연주에서 즉흥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생산되는 재즈의 다수는 준비된 편곡에 의존해 연주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탄탄한 맛은 있지만 또 그만큼 날것의 싱싱한 맛은 덜하다.
80세가 넘은 노장 색소폰 연주자 리 코니츠를 중심으로 찰리 헤이든, 폴 모시앙 그리고 이들의 아들 격인 브래드 멜다우가 만나 녹음한 이 앨범은 순간성에 의존하는 음악으로서의 재즈를 새로이 맛보게 해준다. 과거 연주자들이 즉흥적으로 모여 호흡을 맞추었던 것처럼 이 네 명의 연주자들은 지난 2009년 12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뉴욕의 버드랜드 클럽에서 만나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즉흥성을 살리기 위해 일체의 사전 연습 없이 현장에서 곡을 정하고 연주했다고 한다. 모처럼 순수한 연주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할까? 어쩌면 네 사람의 머리 속에는 1950년대의 버드랜드가 자리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앨범에 담긴 6곡의 연주를 들어보면 생각보다 안정적인 상태를 보인다. 여기에는 네 연주자가 풍부한 경험으로 순간의 상황에 적절히 호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데다가 스탠더드 곡들을 비교적 여유를 갖고 연주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네 연주자가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리 코니츠와 브래드 멜다우, 찰리 헤이든은 트리오를 이루어 <Alone Together>(Blue Note 1997), <Another Shade Of Blue>(Blue Note 1999) 같은 앨범을 녹음한 적이 있다.
이처럼 호흡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인지 네 사람의 연주는 긴장 속에서도 상당히 쿨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네 연주자가 각각의 위치에서 순서에 따라 자신의 솔로를 펼치는데 그 흐름이 무심과 관심 사이를 교묘히 유영하는 듯하다. 특히 리 코니츠의 색소폰 연주는 잘 알려진 스탠더드 곡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80대의 노장에게 아직도 재즈는 새로이 탐구할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또한 네 명중 가장 나이가 어리면서도 자신의 서명을 선명하게 하로 새기는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노 또한 인상적이다. 물론 이러한 빛남은 찰리 헤이든과 폴 모시앙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사실 유명 연주자들이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 음악 또한 뛰어난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런 중에 이 앨범은 흥미로운 만남만큼 만족스러운 음악을 들려준다. 뛰어난 명작을 남기려는 마음보다 순간 자체에 충실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