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Peripateticien – Christine Wodrascka, Yves Romain (La nuit transfigurée 2000)

보통 장르라는 개념은 이미 존재하는 음악들을 하나의 형식적 특징을 전제로 묶는다. 그 형식은 때로는 음악을 제약하기도 하고 때로는 음악을 상정하는데 용이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데 기존의 음악들을 정리한다는 것은 때로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인 음악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가 있고 새로운 음악적 사고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현대 재즈에 있어서도 기존의 어떤 재즈 장르개념으로 묶기 힘든 흐름이 있다. 이 흐름은 재즈의 즉흥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인데 의외로 즉흥성의 강조는 기보된 음악을 중요시하는 현대 클래식에서의 흐름과 만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현재는 그냥 New Music이라는 것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음악의 스타일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장르 개념으로는 정의될 수 없는 흐름을 하나로 묶는 것일 뿐이다. <Le péripatéticien-소요학파의 철학자라고 내 작은 불한 사전에 나와 있는데 그 소요철학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은 이런 재즈의 흐름을 반영하는 앨범 중의 하나이다. 피아노와 베이스 두 연주자가 만나서 그들간의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런 스타일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좀 당혹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듣던 사람들이 갑자기 밥스타일의 연주를 들었을 때의 당혹감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 앨범에서 듣게 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다. 즉흥 연주이기에 그 순간의 느낌이 더 강하게 표현되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순간의 연주를 이끄는 것은 연주자의 분석된 경험에 기인한다. 실제로 예상하는 만큼의 혼란스러운 음악은 적다. 차분하게 명상을 하듯이 전개되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마치 하나 하나의 음들을 깊은 사고를 한 뒤 표현하듯이 각 음들간에는 상당한 침묵의 시간과 공간이 개입되어 있다. 이러한 이성적인 방법으로 표현된 음악에서 감성적인 효과들이 이차적으로 발생한다. 바하가 대위법을 철저하게 지켜가면서 만든 곡에서 단순한 음들 조합의 차원을 넘어서는 감성적인 면이 생기는 것처럼 이 들의 음악들은 얼핏 보기에는 되는대로 연주하는 듯하지만 자신의 사고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려하며 연주한 결과이다. 그래서 설령 많은 음들이 연속되고 겹쳐지는 연주가 나오더라도 결코 손이 가는대로 오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런 이성적인 면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모든 음악의 즉흥 연주의 배경에는 두 연주자에 의한 작곡이 있다. 그러나 테마를 떠올리게 하는 멜로디를 발견하기 힘들다. 작곡단계에서부터 다른 방식으로 사고한 결과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도대체 작곡자는 머리 속에 무엇이 들었기에 이런 곡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이 앨범도 그런 질문을 하게 한다.

연주적인 측면에서도 다르다.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기교적인 면이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이들이 연주에서 찾는 새로움은 기교보다는 소리에 있다. 그래서 피아노는 크리스틴 보드라스카의 의도대로 미리 조율되기도 하고 이브 로맹의 베이스는 바리톤 색소폰-이를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할 지라도-의 음색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연주자들은 음악의 어떤 점을 생각할까? 물론 순간의 솔직함이다. 이것은 사고가 음악적 양식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손끝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고의 주제는 새로운 음악 언어가 아닐지. 그러므로 이 음악은 많은 대중을 기대하지 않는다. 주파수가 맞는 소수의 대중을 기대한다고 할까? 그렇다고 이 앨범이 엘리티즘을 나타낸다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를 위해 만국 공통어를 배우고 사용하려는 것 대신 그들만의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고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배우기를 꿈꾸는 미래형 음악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낳을 것이다.

이 앨범은 제작한 라벨 La nuit transfigurée의 첫 앨범이다. 즉흥 연주와 현대 클래식, 그리고 고음악을 다루는 이 라벨은 앨범 형태부터 특이하다. 앨범의 주인이 자신의 음악에 대한 사고를 표현하고, 한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하는 음악등의 항목으로 나뉘어진 종이의 질도 좋은 한 권의 책을 연상하게 하는 형태이다. 음반 자체의 에술성을 중요시한다고 볼 수 있는데 새롭기도 하고 위험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음반 자체로서는 매우 세심한 배려를 했다고 본다. 이런 음반 형식은 두 연주자의 음악을 이성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매일 이런 음악을 듣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 전혀 새로운 음악 언어를 경험하는 일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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