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늘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누군가의 영향을 받는다. 재즈 연주자들도 마찬가지. 재즈 연주자들은 여러 선배의 장점을 흡수하고 단점을 자기식으로 보완하며 자신만의 무엇을 찾아 나간다. 그런 도움을 주는 선배 연주자가 생존해 있고 또 자신과 함께 연주할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녀)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을 것이다. 우리의 피아노 연주자 배장은에게는 그렉 오스비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현재 포스트 밥 혹은 아방가르드 재즈 내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색소폰 연주자는 배장은의 피아노를 사랑한다. 이것은 이미 배장은의 지난 앨범 <GO>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이 앨범 외에도 그는 자신의 공연에 배장은을 합류시키고 싶어할 정도로 그녀의 연주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고 한다.
배장은의 이번 네 번째 앨범은 그렉 오스비와의 돈독한 우정, 치밀한 호흡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준다. 배장은의 피아노와 키보드, 그렉 오스비의 알토 색소폰, 저스틴 그레이의 베이스, 아담 텍세이라의 드럼으로 이루어진 쿼텟 편성으로 서울에서 녹음된 이 앨범은 단 하루만에 리허설과 앨범 녹음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순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즈의 매력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각 곡들은 순간적인 잼의 느낌보다는 모든 것이 차분하게 계획된 듯한 안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모두 배장은과 그렉 오스비, 그리고 쿼텟의 호흡이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한편 그렉 오스비와 함께 하고 있으면서도 앨범은 배장은만의 개성이 가득하다. 어린 시절 흙으로 집을 만들며 부르곤 했던 동요 ‘두꺼비’의 과감한 변주, 타이틀 곡 ‘Last Minute’의 몽환적이고 멜랑콜리한 서정, 라흐마니노프의 클래식 ‘Prelude In C# Minor’에 부여한 내적인 긴장과 리듬 등은 포스트 밥으로 분류되면서도 그 안에서 안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그녀의 음악적 모험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피아노와 키보드를 오가며 펼치는 그녀의 솔로는 그녀가 선배의 무게에 눌리지 않는 자신감이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또한 첫 앨범에서 트리오 편성으로 연주되었던 ‘After He Has Gone’을 네 악기 모두가 자기 색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한 것에서는 음악적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리더로서의 역량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시간상의 문제인지 앨범 수록곡이 6곡에 35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 기왕이면 두 세 곡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신 녹음 과정을 그대로 영상에 담아 DVD로 함께 발매했기에 보다 집중적으로 앨범을 감상할 수 있게 한 점은 매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