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브래드 멜다우를 말하라 한다면 분명 그의 트리오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특히 그의 Art Of Trio 시리즈는 출중한 신예 연주자에서 대중적인 흡입력을 지닌 재즈 리더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리즈의 연주와 음악들은 전통성을 그대로 전수하면서 그 안에 자신의 낭만적-조금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인, 어두운 정서를 담고 있다. 거의 피아노를 어루만지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멜로디를 뽑아내는 그의 연주는 분명 많은 재즈 애호가들에게 매력적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짧은 시간 안에 갑작스레 대중적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한 만큼 거듭되는 자기 반복적인 연주들이 한번은 다른 시도를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를 느끼게 했다. 그런 느낌을 갖게 되었던 때가 바로 지난 해 라이브 앨범 <Art Of Trio 5: Progression>(Warner 1999)였다.
이러한 내 마음을 읽었을까? 이번 앨범은 그의 커다란 모험을 담고 있다. 그 모험은 단지 트리오 편성에서 탈피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옷을 입는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일련의 트리오 연주가 하나의 편성 안에서 그만이 지닌 재즈적인 진수들이 어떻게 심화되어 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 한 것이었다면 이번 모험은 확장의 입장에서 그동안 조금씩 보여주었던 자신의 다른 면, 그러니까 그의 음악적 기본이 무조건적으로 재즈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험은 나도 이러이러한 편성 속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려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는 다양한 편성의 컨텍스트 안에서 자신의 피아노가 어떻게 적응하고 브래드 멜다우식 감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는 다양한 편성과 타장르에 기반을 둔 곡들이 등장하는데 그 편성들은 단지 악기간의 이동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70년대 이후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적인 요인들과 멜다우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현재 우리는 재즈이외의 다른 음악을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과거 재즈 연주자들이 당시 유행하던 재즈적인 음악들을 토양으로 자신의 재즈 마인드를 형성해 왔다면 현재의 재즈는 다양한 음악 속의 일부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재즈 속에 다른 음악적 정서가 개입된다는 것은 의도적인 파격으로 보기보다는 당연한 것이다. 이로 인해 재즈는 동시대와 호흡하게 되는 것이 아닐지.
이러한 이유로 이번 앨범에 담긴 음악들은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기 보다는 전체 사운드 중심으로 바라보면서 또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반대로 브래드 멜다우식 정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면 분명 재미있는 감상이 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브래드 멜다우식의 편곡이라기 보다는 브래드 멜다우 정서의 기초들이 부분부분 각 곡에 편재되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사이키델릭이라 불리는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 낡았다는 느낌을 주는 사운드적인 질감, 테크노적인 강박, 부드러움을 뚫고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강렬함 등은 분명 사운드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기존의 멜다우와는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지만 정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의 어둠과 우울의 기조의 단초를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이전 앨범의 분위기와의 연속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브래드 멜다우가 이러한 모험을 자신이 지닌 스타일의 하나로서 지속시킬지는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시도를 지속시키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번 앨범 하나로도 그가 선배들의 영향을 받은, 그래서 그 느낌을 재현하는 연주자가 아니라 결국엔 현재의 연주자로서 다양한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연주자임을 확인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앨범이다. 그리고 기존의 트리오 앨범마저 전통의 재해석의 관점이 아닌 브래드 멜다우 개인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감상하고 싶은 욕구마저 불러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