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재즈의 특징이라면 자신들의 전통 음악과 잘 융합하려는 노력이 보인다는 것과 진지한 재즈의 창조성에의 접근을 보이면서도 음악을 벗어나는 회화적인 면이 강조된다는 것일 것이다. 이런 것들은 무엇보다 멜로디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강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먼저 멜로디가 있고 그 이후에 모드에 기초한 하모니제이션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곡 자체는 선율적인 면이 강조된 수평적 진행을 보이는 동시 입체감을 통해 회화적 공간을 연출하게 된다.
이런 선율적인 면과 회화적인 면의 강조는 그래서 제작 초기부터 고려되는 면이 있는데 이 앨범 <Kristin Lavransdatter>은 가장 적절한 예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앨범의 배경에 소설이라는 서사물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Sigrid Undset이라는 노르웨이 소설가의 노벨상 수상작 ‘라브란스의 딸 크리스틴’에서 아릴드 안데르센이 아이디어를 얻어 전 곡을 작곡했다. 그래서 전체 앨범은 마치 영화 음악처럼 같은 주제의 반복과 각 곡간의 유기적 연결로 서사성이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노르웨이 민속적인 면을 가미하는 과정에서 숲이나 새들의 노래소리를 생각하게 하는 연주를 사용하여 공간적인 이미지도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아릴드 안데르센의 베이스 연주가 연주자체로서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멀리서 곡 전체가 주는 느낌과 그 것이 다음 곡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바라보는 것이 더 이 앨범을 이해하기 쉽다.
사실 이러한 스타일은 북유럽 재즈의 특성 이전에 아릴드 안데르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언급하기도 했지만 베이스 연주자들의 곡들이 의외로 멜로디가 잘 드러남을 느끼게 되는데 아릴드 안데르센 역시 멜로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현악 앙상블을 통해 클래시컬한 면을 가미하는 식의 작곡을 많이 해 오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런 아릴드 안데르센의 방법론이 일종의 정형화를 가져와 재즈의 즉흥성이 개입될 여지를 줄인다는 비평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앨범을 듣다보면 철저한 유기적 구성으로 이런 의혹을 가질 여유가 없다. 순간적인 즉흥 연주를 통한 변화보다는 다양한 길이를 가진 곡들간의 분위기, 장면전환 그리고 편곡에 의한 테마의 변화가 마치 하나의 곡처럼 진행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곡 단위가 아니라 전체를 한꺼번에 들어야 한다.
한편 전 곡에 펼쳐지는 토레 브룬보그의 색소폰은 여전히 그보다는 얀 가바렉을 더 연상시킨다. 그래서 ‘Kristin Og Erlend(크리스틴과 얼렌드)’같은 곡은 피아노 대신 현악 사중주가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는 차이를 제외한다면 키스 자렛의 ‘My Song’을 떠올리게 한다.
워낙 이런 앨범들이 많아서 이제는 무조건 이런 전형적인 북유럽 스타일의 앨범을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같다. 그러나 감상자를 상상의 세계로 향하게 하는 면에서는 잘된 앨범이라 말하고 싶다. 아주 맑은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