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지난 시절을 저절로 추억하게 되나 보다. 폴 매카트니의 이번 앨범이 그렇다. 이 앨범에서 그는 두 곡의 자작곡을 제외하고 다른 작곡가의 노래를 부른다. 그것도 그가 어린 시절에 좋아했다는 노래를 부른다. 그 가운데에는 폴 매카트니가 태어나기 전-1942년-에 나온 곡도 있으니 꼭 당시의 히트곡만을 노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이미 그의 유년시절에 한 시대를 벗어나 영원성을 획득한 곡들을 노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런데 그가 노래하는 곡들이 스탠더드 재즈 곡들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 흥미롭다. 하긴 그가 존 레논 등과 함께 그룹 비틀즈를 결성하여 대중 음악의 흐름을 바꾸기 전까지는 재즈가 대중 음악의 핵심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유년 시절이 재즈로 채워졌다는 것은 그리 의아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록 음악으로 젊음을 대변하던 그가 재즈를 노래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임엔 분명하다.
아무튼 이번 앨범에서 그는 1935년 패츠 왈러에 의해 유명해진 ‘I’m Gonna Sit Right Down and Write Myself a Letter’을 시작으로 ‘It’s Only A Paper Moon’, ‘Ac-Cent-Tchu-Ate the Positive’. ‘Always’, ‘Bye Bye Blackbird’, ‘The Inch Worm’ 같은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한다. 그리고 재즈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재즈계의 명 제작자 토미 리푸마를 중심으로 다이아나 크롤(피아노), 존 클레이튼, 크리스티안 맥브라이드(베이스), 비니 콜라이우타, 제프 해밀튼(드럼), 존 피자렐리, 버키 피자렐리(기타) 등의 유명 재즈 연주자들을 불렀다. 여기에 자작곡 ‘My Valentine’과 ‘Only Our Hearts’에서는 각각 에릭 클랩튼과 스티비 원더를 초청했다. 이러한 화려한 세션을 배경으로 폴 매카트니 자신은 오로지 노래만 했다. (이 또한 보기 드문 일이 아닐까 싶다.)
이쯤 되면 몇 감상자들은 지난 세기가 바뀔 무렵부터 한동안 이어졌던 중견 팝 가수들의 재즈 부르기를 떠올릴 지도 모른다. 사실 추억을 화두로 삼았다는 것에서는 이들 앨범들과 그리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다른 보컬들이 재즈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했다면 폴 매카트니는 그대로 유지하고 드러냈다는 점에서 앨범을 다르게 보게 한다. 실제 재즈를 노래하지만 그의 보컬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브라이언 페리가 재즈를 노래할 때 여린 바이브레이션을 사용했던 것처럼 폴 매카트니도 목소리의 떨림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 새롭지만 그렇다고 낯선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일급 재즈 연주자들에게 유년시절에 들었던 재즈의 질감을 표현하게 맡기고 자신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노래했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앨범은 재즈의 외양을 하고 있음에도 폴 매카트니의 색이 그대로 묻어 난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고픈 아쉬움보다는 어린 시절의 행복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식의 낭만이 강하게 느껴진다. 낭만, 바로 이 낭만이야 말로 폴 매카트니가 이번 앨범에서 우리에게 들려주고팠던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