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 볼라니는 자기 표현 욕구가 강한 연주자이다. 지금까지 솔로, 듀오, 트리오 등 자신의 피아노가 전면에 잘 드러나는 편성을 중심으로 활동을 해왔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엔리코 라바, 리 코니츠, 프란코 단드레아, 아레스 타볼라지, 칙 코리아, 해밀튼 지 홀란다 등과 함께 한 듀오 연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빅 밴드나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대 편성 연주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의 피아노는 독주 악기로서, 리더로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쿼텟과 빅 밴드 사이의 소규모 콤보 앨범은 손에 꼽을 정도다. 2003년 아코데온, 기타 등과 자신의 이름보다는 ‘L’orchestra del Titanic’으로 활동했던 퀸텟 앨범 두 장, 2006년에 선보였던 퀸텟 지향의 앨범 <I Visionari>, 셉텟과 옥텟 편성으로 녹음했던 라틴 성향의 앨범 <Carioca>와 <Carioca Live>정도를 들 수 있겠다.
그동안 이 이탈리아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가 쿼텟이나 퀸텟 등의 콤보 연주를 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멘토 엔리코 라바와의 그룹 활동으로도 그에 대한 충분한 만족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와 다른 음악적 욕구가 생길 수도 있는 법. 트리오를 너머 쿼텟, 퀸텟 편성을 자유로이 활용한 이 앨범이 이를 말한다.
이 앨범의 타이틀은 우리 말로 거칠게 이해하면 ‘모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행복하자’ 정도로 이해될 것이다. 그런데 피아노 연주자는 이 행복을 순간의 긴장이 만들어 낸 창조적 약동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10년 이상 함께 해오고 있는 예스퍼 볼디센(베이스), 모르텐 룬트(드럼)으로 이루어진 트리오 위로 마크 터너(색소폰), 빌 프리셀(기타)를 추가하게 되었다고 본다. 실제 스테파노 볼라니에 의하면 다섯 명의 연주자는 일체의 리허설 없이 스튜디오에 곧바로 들어가 앨범을 녹음했다고 한다. 특히 평소 완벽한 연주자로 빌 프리셀을 좋아했음에도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마크 터너는 엔리코 라바 퀸텟에서 함께 한 적이 있다.) 그렇기에 앨범은 완벽한 균형감을 보이면서 생동감으로 가득하다. 앨범의 첫 곡 ‘Easy Healing’이 대표적이다. 피아노 연주자의 개성의 일부분을 이루는 라틴 성향의 리듬 연주 위로 여유로이 흐르는 기타와 색소폰 솔로로 이루어진 이 곡은 제목만큼이나 감상자를 밝음과 긍정의 세계로 이끈다.
밴드의 리더는 확연한 멜로디와 그에 담긴 정서로 행복한 약동을 그리지만은 않았다. 과거 재즈의 거장 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순간의 만남이 긴장으로 시작해 이해와 조화로 합일되는 연주의 즐거움을 통해 행복을 표현한다. 그래서 무작정 첫 곡처럼 경쾌한 질주를 하지 않는다. 때에 따라서는 고요한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연주자들의 어울림은 결코 분위기를 가라앉게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Joy In Spite Of Everything이다. 이를 위해 그는 ‘Vale’, ‘Tale From The Time Loop’ 등의 퀸텟 연주 외에 마크 터너와의 쿼텟 연주(‘No Pope No Party’, ‘Las Hortensia’), 빌 프리셀과의 쿼텟 연주(‘Ismene’), 빌 프리셀과의 듀오 연주(‘Teddy’)등을 필요에 따라 자유로이 활용했다. 그리고 이 곡들은 그 다채로운 조합만큼이나 각각 자유로운 어울림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만족을 선사한다. 그 가운데 빌 프리셀과의 어울림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할 매우 정교하다. 특히 스윙 시대의 피아노 연주자 테디 윌슨을 특이하게도 스윙하지 않는 고요의 공간에서 표현한 듀오 연주곡 ‘Teddy’에서의 절묘한 어울림은 짜릿한 행복으로 감상자를 이끌기 충분하다.
곡에 어울리는 편성의 일환으로 스테파노 볼라니는 ‘Alobar e Kudra’와 타이틀 곡을 트리오를 선택했다. 이 또한 세 악기의 부단한 움직임이 주는 긴장과 조화가 즐거움을 준다. 트리오의 지난 앨범 <Stone In The Water>(2009)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한편 즉흥적 상황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악기간의 완벽한 균형과 연주에서의 자연스러운 호흡을 이루고 있다는 것, 개성 강한 연주자들을 기용하면서도 스테파노 볼라니라는 서명을 확연하게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이제 피아노 연주자가 리더로서의 아우라를 지녔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트리오를 너머 쿼텟과 퀸텟을 활용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