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My Favorite Things> (Atlantic 1959)은 존 콜트레인의 음악적 가치 외에 상업적 가치를 높여주었다. 그 결과 1961년 ‘다운비트’지의 올해의 뮤지션 상과 함께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테너 색소폰 부분과 기타 악기 부분-소프라노 색소폰-에서 최고의 연주자 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러한 인기는 앨범 타이틀 곡인 My Favorite Things의 멜로디가 지닌 친숙함 때문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앨범을 통해 존 콜트레인은 보다 복잡하고 보다 개인적인 정신이 반영된 아방가르드 재즈로 나아갈 것을 선언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 이후 1962년까지 존 콜트레인의 앨범을 보면 하드 밥의 양식을 버리지 않으면서 보다 자유롭고 또 그만큼 대가적인 기교가 돋보이는 앨범들이 주를 이룬다.
그 와중에 1962년 존 콜트레인은 아틀란틱 레이블을 떠나 임펄스 레이블과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그런데 임펄스가 존 콜트레인과 어떤 이유로 계약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분명 존 콜트레인의 상업적 가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급했듯이 1960년대 존 콜트레인은 대중적인 방향과는 먼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감상자들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존 콜트레인의 음악에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시 임펄스 레이블의 제작자였던 밥 틸은 감상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또한 존 콜트레인을 이적시킬 때 기대했었을 수익을 실현하고자 일련의 녹음을 기획했다. 그래서 1962년 9월 26일에 녹음된 <Duke Ellington & John Coltrane>, 1961년 12월부터 약 1년여에 걸쳐 녹음된 <Ballads>, 그리고 1963년 3월 7일에 <John Coltrane & Johnny Hartman>을 녹음했다.
이 석 장의 앨범의 주된 특징은 당시 성난 색소폰(Angry Saxophone)이라 불릴 정도로 격렬하고 거친 연주를 보였던 존 콜트레인과는 전혀 다른, 부드럽고 낭만적이며 사랑스러운 발라드 연주를 펼치는 존 콜트레인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존 콜트레인이 이들 앨범을 그다지 녹음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식의 논지를 펼치곤 한다. 또 실제 존 콜트레인이 정말 이들 앨범에 그다지 큰 열의를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축구의 공격수에게 갑작스레 골키퍼 임무를 맡기듯 이들 앨범을 기획한 밥 틸이 존 콜트레인을 전혀 엉뚱한 방향의 앨범을 녹음하게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데뷔 당시부터, 특히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하던 시절 존 콜트레인은 발라드에서 빛을 발하는 탁월한 멜로디 감각으로 감상자를 사로잡곤 했으니 말이다. 따라서 한참 앞으로 전진하던 존 콜트레인이 잠시 숨을 고르고 과거회귀적인 연주를 펼쳤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존 콜트레인이 이들 앨범을 싫어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John Coltrane & Johnny Hartman
이 석 장의 앨범 가운데 <John Coltrane & Johnny Hartman>은 존 콜트레인의 모든 음악 이력 가운데 유일하게 보컬과 함께 한 아주 색다른 앨범이다. 그리고 그 유일한 보컬과의 협연이 절대적 아름다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컬 자니 하트만과 존 콜트레인이 함께 녹음할 수 있었을까? 물론 언급했다시피 두 사람의 만남은 제작자 밥 틸의 기획이었다.
사실 이 두 사람은 1949년 디지 길레스피 빅밴드에서 잠시 스쳤던 적이 있었다. 당시 존 콜트레인은 빅밴드에서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었고 자니 하트만은 1947년부터 다른 가수들과 번갈아 가며 노래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니 하트만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밥 계열의 빠른 템포로 이루어진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실제 그는 디지 길레스피 빅 밴드에서도 발라드만을 노래했고 이후에도 재즈 보컬 이전에 발라드 가수로 정평이 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1963년 일본 공연을 하고 있던 그에게 밥 틸이 존 콜트레인과 함께 앨범을 녹음할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그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드 밥의 정교한 구조를 극단으로 이끌고 이제는 전위적인 방향의 속주를 펼치는 존 콜트레인과의 녹음이라니!
그래도 제작자는 일반 감상자들과는 다른 감각이 분명 있는 모양이다. 밥 틸은 망설이는 자니 하트만에게 당시 버드랜드에 가서 당시 공연하고 있던 존 콜트레인의 연주를 들어보라고 했다. (당시 존 콜트레인이 어떤 연주를 했으며 자니 하트만이 어떤 인상을 받았을지 궁금하다.) 그래서 그는 클럽에 가서 공연을 보고 클럽이 문을 닫은 후에 존 콜트레인과 함께 한 두 곡을 맞춰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약 일주일 후에 루디 반 겔더 스튜디오에서 앨범 녹음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녹음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You Are So Beautiful’을 제외한 모든 곡의 녹음을 단 한번에 마쳤으니 말이다. 특히 ‘Lush Life’의 경우 존 콜트레인과 조니 하트만이 스튜디오로 차를 타고 오는 도중 라디오를 통해 냇 킹 콜의 노래를 듣고 순간적으로 녹음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부랴부랴 가사를 구해 바로 녹음을 했다고 하니 잘 계획되어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이 앨범도 재즈적인 한 순간의 기록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상보적 조화
그렇다면 왜 밥 틸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두 사람을 함께 하게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러나 앨범을 통해 추측을 해본다면 조니 하트만이 발라드에서 강점을 보인다는 것과 존 콜트레인 역시 발라드 연주에서 이야기 하는 듯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밥 틸의 생각은 여기서 더 나가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앨범에서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은 강한 대비효과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조니 하트만은 프랑크 시나트라로 대표되는 크루너-중저음이 매력적인 보컬의 하나라 불리곤 하지만 실제 그의 목소리는 보다 묵직한, 그래서 때로는 부담스러운 바리톤에 가깝다. 반면 당시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은 톤에 있어 마냥 가볍다고 할 수는 없지만 늘 비상의 이미지를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밥 틸은 두 사람의 만남이 상보적 관계를 형성할 것이라 보았던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They Say It’s Wonderful’에서 조니 하트만이 특유의 저음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하면 이내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이 무거워진 분위기에 낭만적 상승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반대로‘My One & Only Love’에서 존 콜트레인이 먼저 날아갈 듯 매끄럽고 가벼운 솔로를 펼치면 이내 조니 하트만의 깊이 있는 목소리가 이어지며 사운드에 무게를 실어준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만남에서 매혹적이고 달콤한 음악적 공간이 만들어진다.
앨범 이후
이 앨범은 커다란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후 두 사람이 보여준 행보는 다르다. 조니 하트만의 경우 이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1958년 이후 다소 부진했던 활동을 만회하는 기회를 잡았다. 그래서 곧바로 앨범 <I Just Dropped by to Say Hello>를 녹음하며 임펄스 레이블에서 앨범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 성공도 잠깐, 존 콜트레인 같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연주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이내 다시 음악적 침체기를 맞이했다. 이것은 1983년 그가 세상을 뜨기 직전인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존 콜트레인의 경우 상업적인 면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린 듯 이내 새로운 단계로 음악적 도약을 할 준비를 했다. 그 결과 1년 뒤인 1964년 존 콜트레인의 후기 명작이라 할 수 있는 <Love Supreme>을 발표하며 보다 영적이고 종교적인 깨달음을 담은 음악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끊임없이 음악적 비약을 하던 1967년 세상을 떠났다.
Alternative Take?
이 앨범에는 6곡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을 위해 두 사람은 6곡이 아니라 7곡을 녹음했었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그 한 곡이 바로 ‘Afro Blue’인데 이 곡은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으며 녹음 테이프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편 후에 존 콜트레인은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My One & Only Love’, ‘You Are Too Beautiful’, ‘Lush Life’에 추가적으로 자신의 솔로 연주를 녹음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한 때 앨범으로 발매되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현재는 오버 더빙이 없는 버전, 그러니까 초판 상태의 앨범이 유통되고 있다. 그래서 정말 추가로 녹음된 연주는 어떠했는지, 두 사람이 함께 한 ‘Afro Blue’는 어떠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어쩌면 훗날 ‘Complete~’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을 다 수록한 앨범이 새로 발매될 지도 모를 일이다.
저역시 콜트레인의 팬으로서 빌리지 뱅가드의 방대한 주술에 도취되는 절대적인 신도이지만 만약 프리스티지 시절의 발라드가 없었더라면.. 저에게 콜트레인의 무게는 절반으로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네요.ㅎ 이 음반은 반드시 엘피로 소장하리라 이베이를 기웃거리다 늘 아웃비드의 쓴잔을 받아 마시느라 여지껏 없습니다. 언젠가 인연이 닿아 민트급을 거머쥐고 싶도록 유혹하는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그렇죠. 발라드를 통해 존 콜트레인을 알게 되어 그 이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런 편이죠. ㅎ 초판이 매물로 돌아다니긴 하는 모양이군요. 저도 궁금하기는 한데…그렇다고 막 그것만 찾는 스타일이 아니라서..후에 구하시면 들으시고 느낌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ㅎ
아오~~ 감미로움이 아주…
정말 간만에 로맨틱함을 느껴보네요.^^
겨울에 잘 어울리는 앨범이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