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로움만을 보고 앞으로 나갔던 ECM이 몇 해 전부터 이제는 구하기 어려운 지난 시절의 앨범이나 감춰진 녹음을 공개하고 있다. 키스 자렛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해 상반기에 유러피언 쿼텟의 미 공개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 <Sleeper>를 내놓더니 이번에는 키스 자렛의 창조적 열정이 절정에 올랐을 무렵에 녹음된 오르간 연주 앨범을 재 발매했다. 재 발매라고는 하지만 이전까지 CD로는 전체 앨범에서 발췌된 4곡만을 담은 형태로 발매되었었기에 CD 시대에 키스 자렛을 알게 된 감상자들은 새로운 앨범을 만나는 느낌을 받게 되리라 생각된다.
1976년 키스 자렛은 찰리 헤이든과의 듀오 앨범, 아메리칸 쿼텟의 앨범, 일본 5개 도시 순회 공연을 담은 박스 세트 앨범 <Sun Bear Concert> 등을 녹음하는 등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그런 중에 9월 독일을 여행하던 중, 오토보이렌이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한 베네딕틴 수도원에서 오르간의 장인 칼 요셉 리에프가 만든 트리니티 파이프 오르간을 보았다. 이 명 오르간에 매료된 그는 직접 연주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오르간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없음에도 과감하게 연주에 몰입했다. 그 연주는 일체의 수정이나 효과 없이 그대로 녹음되어 앨범에 담겼다.
수도원에서 녹음되었기 때문일까? 앨범은 Hymn으로 시작해 Hymn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 앨범을 중세의 종교적 색채를 지닌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두 Hymn사이에 연주된 9개의 ‘Spheres’는 순간의 영감에 기초한 즉흥 연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만큼 현대적인 질감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말이다. ‘구(求)’란 제목처럼 그의 연주는 종교적 경건함보다는 인간적 갈망에 가까운 무한 상승의 의지로 가득하다.
오르간 소리 또한 현대적이다. 수도원의 대형 오르간 연주 자체가 그에게 낯설었던 만큼 그는 우연에 맞기듯 음관열(音管列)을 자유로이 조작하여 기존에는 듣기 어려웠던 장엄한 천상보다는 신비한 우주에 가까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Spheres’의 9악장이 대표적이다. 이 곡에서의 오르간 소리는 신디사이저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한편 다소 거리를 둔 마이킹으로 수도원에 흐르는 공기의 결을 함께 담아낸 녹음도 음악을 보다 웅장하게 만든다. 조금은 큰 볼륨으로 감상한다면 음악 외에 키스 자렛이 녹음할 당시 느꼈던 수도원의 공간적 압도감도 느낄 수 있다.
한편 키스 자렛은 1979년에 다시 한번 오토보이렌의 수도원을 다시 찾아 오르간을 연주했다. 앨범 <Invocations/The Moth And The Flame> 에 수록된‘Invocations’이 그것이다. 비교 감상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