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알려진 북유럽 재즈의 이미지는 차가움과 회색 빛의 모노톤일 것이다. 그리고 혹자는 잘 정리된 깨끗함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어감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엔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만난 몇몇 북유럽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친구들도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 밖에서 본 사람들의 시각만은 아닌 듯싶다. 그만큼 북유럽의 재즈는 그들의 지리적 기후적인 여건과 전통음악적인 배경을 잘 반영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라벨 Kirkelig Kulturverksted를 통해서 소개되는 음악들은 장르의 개념보다는 북유럽적인 것을 중심으로 묶여진다. 그래서 상이한 음악 장르간의 결합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이 라벨은 교회 미술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한데 그래서 최근 전시회와 음악회를 위한 야콥이라는 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창조성을 중심으로 노르웨이 전통과 교회 문화을 중시하는 라벨에서 겨울을 장식할 만한 음반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 앨범이 그렇다. 이 앨범은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이면서도 상상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알려진 크리스마스용 재즈 앨범들은 지극히 미국적인 것들이 많았다. 미국판 멜로 영화에서 들을 법한 편곡의 도시적인 연주들이 대부분이었다. 벽난로 앞에 모인 따뜻한 가족의 이미지, 아니면 한 바에서 즐거운 축제의 분위기가 미국식 캐롤 음반의 이미지였다면 이 음반에서는 숲속의 한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스러운 예배를 떠올리게 된다. 크리스마스 원래의 이미지에 더 근접하는 이미지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이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 케틸 베르크스트란드는 교회 오르간을 찾아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Avaldsnes라는 한 중세 교회에서 훌륭한 오르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종교적인 분위기가 더 많이 드러난다. 나아가서는 일리어드 앙상블과 얀 가바렉이 함께 만들었던 음악 분위기를 떠올리게 된다.
색소폰 연주자 토레 브룬보그는 ECM의 여러 음반에서 존재를 드러낸바 있는 연주자다. 개인적으로 그의 색소폰 연주를 들을 때마다 얀 가바렉을 떠올리곤 하는데 이 음반에서는 그 유사성이 더 잘 느껴진다. 음색은 물론이고 강약의 조절, 프레이징의 전개가 매우 유사하게 들린다. 그래서 단순히 얀 가바렉의 모방이 아니라 북유럽의 색소폰 소리는 다 이런 것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프레이징까지 비슷하다는 것은 북유럽의 전통음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케틸 베르크스트란드가 펼쳐내는 연주는 재즈보다는 교회 음악과 현대 클래식 전통에 더 가깝게 들린다. 거의 솔로는 하지 않고 색소폰을 드러나게 하는 분위기로서 작용하고 있다.
스튜디오가 아닌 교회에서 라이브로 녹음되었기에 자연 잔향이 생생한 공간감을 드러낸다. 특히나 음악의 배경으로 절대 침묵이 아닌 공기의 흐름이 오르간을 통해 들리는 것이 감상을 방해하기 보다는 음악적 운치를 자아낸다.
캐롤 앨범이라고 그저 단순하게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지는 않다. ‘고요한 밤’을 비롯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멜로디와 노르웨이 전통 곡으로 꾸미고 있는데 각 곡마다 짧지만 즉흥 연주를 넣고 있다. 주로 토레 브룬보그가 테마를 이끌며 그 테마에서 살짝 변주하는 형식으로 가볍게 즉흥을 하는데 때로는 캐롤의 차원을 벗어나는 긴장감있고 자유로운 연주를 전개하기도 한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아주 조용하게 솔로를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의 차원을 벗어나 단지 캐롤곡을 테마로 한 순수 감상음악으로 보아도 별 무리가 없는 앨범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위해서 감상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듣기보다는 친한 소수의 사람들과 감상하기에 더 좋은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