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재즈에서 두 가지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상반된. 하나는 재즈가 즉흥성을 강조하는 음악인만큼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음악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대중 음악사상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음악인 만큼 그 안에 아련하고 따스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동전의 양면이라면 모를까 하나로 어울리기 어려운 이미지가 재즈 안에 공존한다.
이러한 상반된 이미지가 재즈 안에서 공존하게 된 것은 그만큼 재즈가 다양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진보적인 재즈가 있는가 하면 오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재즈의 두께를 더욱 두텁게 하는 재즈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이상적인 재즈는 무조건 새로움만 찾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과거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익숙함과 신선함이 공존하는 재즈가 아닌가 싶다. 실제 재즈 역사를 빛낸 명반이라 하는 앨범들 대부분은 새로움을 추구하되 과거를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음악을 담고 있다. 연주자나 보컬 개인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할 때 꾸준한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재즈를 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긴 하다.
다이아나 크롤은 어떨까? 그녀는 현재 재즈계를 대표하는, 인기에 있어서는 20년 이상 최고라 할 수 있는 보컬이다. 이렇게 그녀가 오랜 시간 정상의 자리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달콤하고 낭만적인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매번 적절히 새로운 요소를 자신의 음악에 넣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그녀는 냇 킹 콜 트리오의 유산을 계승한 앨범부터, 미풍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앨범, 브라질의 낭만을 담은 보사노바 앨범, 빅 밴드와 함께 한 앨범, 작곡가로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 앨범 등 다양한 스타일의 앨범을 선보였다. 한 명의 보컬이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거의 다 해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대부분의 앨범들이 비슷하지 않았냐고 이의를 제기할 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다이아나 크롤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신의 의지를 앞세우는 대신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가 지닌 매력을 내세우는데 주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중심에 두고 스타일의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에 새로움이 낯선 대신 익숙한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이리라. 말하자면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되 그것에 매몰되지 않는 자신만의 매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녀를 성공하게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보통의 감상자들은 늘 편안하고 익숙한 음악을 듣기 원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안에 연주자나 보컬의 개성이 담긴 음악을 선호한다. 그녀보다 훨씬 더 달콤하게 노래하는 보컬들이 실상은 그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면을 고려해도 그녀의 이번 새 앨범은 아마도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변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것 같다. 나 또한 앨범을 듣고 나서 상당히 과감한 시도에 놀라고 약간은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녀가 경의를 표했던 냇 킹 콜 트리오 시절보다 더 오래된 듯한 복고적인 분위기에 블루스나 록적인 맛까지 느껴졌으니 말이다. 실제 앨범에서 그녀가 노래한 곡들의 상당 수는 1920, 30년대에 씌어졌다. 여기에 그녀의 피아노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블루스와 포크적 색채가 강한 기타가 강조된 건조한 질감의 사운드는 그녀의 음악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더욱 생경하게 느껴질 만한 하다. 평소 우아한 옷차림을 한 그녀 대신 관능적인 부분을 강조한 (속)옷을 입은 그녀를 담아낸 앨범 표지도 그만큼 낯설게 다가온다. (이 사진은 1920년대의 사진작가 알프레드 체니 존스톤의 ‘Ziegfeld Follies’이라는 시리즈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다이아나 크롤의 의뢰에 의해 디자니어 콜린 앳우드가 옷을 만들고 사진작가 마크 셀리거가 사진을 찍었다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앨범은 그녀의 여러 앨범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지 않은 앨범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했다.
도대체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생각해봤다. 제작자를 살펴보니 T 본 버넷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T 본 버넷은 록 음악쪽에서 활동하다가 최근에는 앨범 제작자로 이름을 얻고 있는 인물이다. 다이아나 크롤의 남편인 엘비스 코스텔로의 앨범도 제작을 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엘비스 코스텔로가 그를 아내에게 추천했으리라 생각된다. 실제 이번 다이아나 크롤의 앨범은 음악적으로 그 동안 이 제작자가 손을 대었던 여러 앨범들과 유사한 면이 많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것이 제작자의 입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 제작자가 아무리 힘이 세도 신인이 아닌 한 사람의 음악적 색을 확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T 본 버넷은 그녀가 필요에 의해 선택된 제작자였다. 즉, 이 모든 것은 그녀가 기획을 했던 것이다. 지난 2009년 브라질 여행 끝에 만들었던 앨범 <Quiet Nights>이후 그녀는 더욱 더 새로운 음악을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새롭다고 아무 시도나 할 수는 없는 법. 잘 알려진 스탠더드 곡들을 자기 식대로 노래했던 것처럼 그녀는 지난 시대의 익숙함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영감을 얻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부터 들었고 지금도 집 한 켠에 쌓아둔 오래된 78회전 SP 앨범들이 생각났다. 이 앨범들에서 그녀는 오래되었지만 현재에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곡들을 골랐다. 꼭 재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블루스나 록, 포크 등을 아우르는 곡들을.
그렇다고 해서 그녀는 마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듯 노래하고 싶지는 않았다. 원곡이 만들어졌던 시대에 머무르기를 바라지 않았다. 원곡이라면 모를까 지난 시대, 그것도 살아보지도 못한 시대를 재현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꼭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다. 대신 그녀는 지난 시대의 흔적을 유지하면서도 현재에도 어울릴 수 있는 사운드를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T 본 버넷을 제작자로 불렀던 것이다. 그 기대에 걸맞게 제작자는 기타, 반조, 우크렐레, 도브로 등이 들어간 밴드를 생각하고 마크 리봇, 브라이언 수튼, 콜린 린든 등의 연주자를 모았다. 그 결과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그녀의 이전 음악과는 다른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고.
그런데 신기한 것은 들을수록 앨범은 새로운 느낌보다는 익숙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비록 편성은 조금 다르지만 그녀의 다른 앨범들만큼이나 편하고 낭만적인 느낌을 준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우리는 이미 지난 2004년에 경험한 적이 있다. 남편 엘비스 코스텔로의 영향을 받아 녹음했던 <The Girl In The Other Room>도 그녀의 다른 앨범들과는 많이 다르지 않았던가? 하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긴 그녀의 (치명적) 매력은 그래도 남아 있어 그리 큰 이질감 없이 앨범을 즐겨 들었던 적이 있다. 이번 앨범도 비록 옷차림은 다르더라도 기본적인 편안함은 비슷하다.
이 앨범의 마지막 곡 ‘When The Curtain Comes Down’은 사회자로 보이는 남성의 멘트가 곁들여져 있어 곡 제목만큼이나 모든 쇼가 끝나고 커튼이 내려갈 무렵의 분위기를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앨범을 다 듣고 나면 노래와 음악은 물론 춤과 곡예, 그리고 코미디가 어우러진 오래된 보드빌 쇼를 하나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앨범에서 다이아나 크롤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레퍼토리와 시대적 배경이 바뀌어도 다이아나 크롤이 주인공인 쇼, 그래서 그 색다름 속에서도 이전의 편안함과 낭만은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쇼 같은 앨범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진정한 의도였다는 것이다.
이번 앨범이 외견상으로는 워낙 독특한 맛이 있어서 이후에도 이런 분위기가 유지될 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나이가 들고 우리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음악적 매력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는 것일 뿐.
개인적으로 여성 보컬 중 가장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예 매력적이죠. 달콤하고 분위기 있고 게다가 볼륨감도 있고…ㅎㅎ
ㅋㅋ 끄덕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