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유럽 피아노 연주자들이 그렇지만 유난히 엔리코 피에라눈지는 연주에서 클래식적인 면모를 드러내왔다. 또한 작곡, 편곡에서도 클래식적 소양을 적극 드러내곤 했다. 따라서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감상자라면 한번쯤 그가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도메니코 스카를라티를 주제로 한 이번 앨범은 많은 감상자들의 흥미를 끌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평소 엔리코 피에라눈지의 연주로 볼 때 낭만주의 작곡가의 음악이 대상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바로크 작곡가가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의아하다. 하지만 이 클래식 작곡가가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것, 그래서 이탈리아 피아노 연주자에게 평소 정서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모양이다.
엔리코 피에라눈지가 앨범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먼저 원곡을 연주하고 여기서 자신만의 즉흥 솔로 연주를 산뜻 명료하게 전개하는 것이다. 클래식의 엄격함과 재즈의 자유가 만났다 싶은데 앨범 내지를 보면 정작 엔리코 피에라눈지는 이것을 클래식의 재즈화 같은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아마 즉흥 연주의 순간에도 클래식적인 면을 살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 앨범은 클래식을 재즈적으로 연주한 것보다는 키스 자렛의 클래식 연주처럼 엔리코 피에라눈지의 클래식 연주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따라서 이 앨범의 묘미, 원곡의 클래식적인 연주와 자유로운 발전을 맛보는데는 재즈 애호가보다는 클래식 애호가가 더 유리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