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M Travels : 새로운 음악을 만나다 – 류진현 (홍시 2015)

rjhECM 레이블은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의 감성적 귀에서 출발한 음악적 우수성, 모든 악기를 명확히 듣게 만드는 넓은 공간감과 투명한 질감의 사운드, 음악만큼이나 인상적인 앨범 표지 등이 어우러진 앨범 제작으로 재즈와 클래식 (그리고 월드뮤직)계에서 매우 독창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그만큼 특정 앨범이나 연주자가 아닌 레이블 자체가 예술적 관심을 받고 있다. 그 결과 레이블을 주제로 한 전시회의 개최, 서적 발간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2013년 ECM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려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ECM을 주제로 한 책이 발간되었다. 글쓴이는 류진현. 그는 음반 회사 C&M에서 일하면서 ECM 레이블의 앨범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해왔다. 따라서 그가 ECM을 주제로 책을 썼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발간된 ECM 관련 책들이 주로 커버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었던 것과 달리 이 책은 앨범과 그 안에 담긴 음악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하다.

ECM의 많은 앨범들 가운데 저자는 ‘거목들의 숲’, ‘안개 속을 보다’, ‘투명하고 평온하게 빛나다’라는 이름의 세 장을 통해 33장의 앨범을 소개했다. 앨범 숫자상으로는 다소 부족해 보일 수는 있지만 키스 자렛부터 엔리코 라바에 이르는 거장들과 토드 구스타프센부터 비제이 아이어 등 ECM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갈 연주자들을 골고루 잘 다루고 있다. 따라서 ECM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게다가 선정된 앨범들은 ECM을 떠나서 모두 잘 만들어진 명반들이다.

그런데 나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선정된 앨범의 면모가 아니라 그 앨범들을 소개하는 저자의 글 솜씨이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독자가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에 빠진 나머지 과한 수사로 앨범을 장황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앨범 제작에 관련된 이야기들- 설령 책에 소개된 앨범들을 감상한 독자들이라도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접하는 부분이 꽤 있을 것이다.- 연주자의 간단한 이력, 앨범의 내용에 대해 무척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어찌 보면 리뷰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용이 건조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 담담한 전개가 침묵을 기저에 깔고 있는 ECM 사운드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책 읽기 자체도 음악 감상과는 별도의 만족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에 책에서 다룬 앨범 표지를 중심으로 연주자나 다른 앨범들 사진을 충분한 여백을 두고 적절히 배치한 편집 또한 ECM스럽다.

사실 나도 ECM에 관한 책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이 나온 것에 살짝 질투도 느꼈다. 하지만 욕심 없이 차분하게 쓴 저자의 글이 이를 잊게 한다. 오히려 새로운 글쓰기의 욕망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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