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피터 어스카인과 누옌 레는 몇몇 앨범에서 만나서 함께 연주를 했었지만 프랑스의 베이스 연주자 미셀 베니타가 트리오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에는 매우 낯선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들의 만남이 이번 앨범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년 전 프랑스의 한 재즈 페스티벌에서 이루어졌었고 이번 앨범은 일종의 트리오의 결과물에 해당한다니 이런 저런 상상을 가능하게 바라보는 나로서도 매우 놀랍게 다가온다.
일종의 수퍼 트리오로서 세 연주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들의 곡을 가지고 와서 앨범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역시 누옌 레가 연주하는 기타다. 그동안 그의 다양한 앨범 활동이 트리오를 근간으로 하여 다른 악기를 필요에 따라 배치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고 앨범도 ACT를 통해 발표되는 것으로 보아 이번 앨범의 아이디어도 그에게서 나왔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무튼 둥글고 안정적인 톤을 자랑하는 미셀 베니타의 연주나 리듬 속에 악기들을 가두기보다 열려진 방향으로 유도하고 조율하는 피터 어스카인의 드럼도 뛰어나지만 오묘한 누옌 레의 기타 사운드가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사실 그의 기타는 일반적인 재즈 기타의 톤을 벗어난다. 이것은 단지 그의 이력이 재즈 이전에 롹에서 시작했다는 것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런 자기 자신의 기본을 인정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즉, 일부러 자신을 재즈적인 기타연주에 맞추려고 자신에게 육화된 롹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기본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 그만의 기타 톤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게다가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 그의 작업과는 다른 점을 보인다. 그동안 누옌 레의 앨범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민속 음악스타일을 재즈에 접목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혼자만의 리더 앨범이 아닌 만큼 보다 더 재즈적인 문제로 돌아간 모습을 보인다. 기존의 동양적인 분위기는 작곡에서 느껴지는 경우가 있지만 부차적으로 나타난다. 그의 관심은 음악적 정체성보다는 그동안의 음악작업에서 얻은 자신의 기타에 대한 정체성을 단순한 곡 속에서 기타연주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빌 프리셀과 알란 홀즈워스(가끔은 지미 헨드릭스)를 섞어 놓은 듯한 우주적인 톤으로 진행되는 그의 기타는 현란한 기교를 보이지 않는다. 동양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고정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피치 조절과 이펙트의 사용은 멜로디를 연주할 때도 선적으로 흐른다기 보다는 면적으로 펼쳐진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믹싱에서 드럼의 심벌에 평소보다 적은 잔향을 주어 드럼이 색채감보다는 리듬적인 면을 더 강조하게 했다. 게다가 격렬하게 밀어 부치지 않고 숨 쉴 시간을 주는 여유로운 진행을 보인다.
곡을 잠깐 언급한다면 누옌 레 특유의 기타 톤이 돋보이는 ‘ZigZag’, (서양에서 본) 오리엔탈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미셀 베니타의 ‘Free At Last’, 그리고 피터 어스카인의 아름다운 어쿠스틱 발라드 ‘Autumn Rose’와 이번에도 등장하는 ‘Bass Desires’등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