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 연주자 얀 가바렉은 수십 년간 재즈를 중심에 두면서도 월드 뮤직, 뉴 에이지, 그리고 클래식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래서인지 그가 오랜 시간 자신의 그룹을 이끌어왔다는 사실은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 듯하다. 사실 1978년도 앨범 <Photo with Blue Sky, White Cloud, Wires, Windows and a Red Roof>부터 그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가 장기적인 목적으로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하려고 생각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1992년에 발표했던 <Twelve Moons>앨범이 기대 이상의 세계적 성공을 거두면서 그룹의 지속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그룹의 정체성이 어느 정도 확립되고 또 그와 함께 인기를 얻게 된 이후 얀 가바렉 그룹의 앨범이 한 장도 발매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가장 최근 앨범이 1999년에 발매되었던 <Rites>였으니 근 10년간 침묵한 셈이다. 하지만 그룹은 높은 인기에 맞추어 꾸준하고도 활발한 공연 활동을 펼쳐왔다. 따라서 이번에 10년 만에 선보이는 그룹의 새 앨범이 라이브 앨범인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난 2007년 10월 20일 독일 드레스덴에서의 공연을 담고 있는 이 앨범은 그룹뿐만 아니라 얀 가바렉의 첫 번째 라이브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데 그룹의 멤버 구성이 색다르다. 30년간 얀 가바렉과 함께 해온 피아노 연주자 라이너 브뤼닝하우스는 그대로 있고 마뉘 카쉐(드럼), 유리 다니엘(베이스)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마뉘 카쉐의 참여는 마릴린 마주르 이전에 그룹의 드럼 연주자로 활동했었고 또 최근에는 자신의 앨범에 얀 가바렉을 불렀었기에 어느 정도 이해될 만 하다. 반대로 유리 다니엘은 정말 낯선 존재인데 당시 에버하르드 웨버가 병으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되면서 대타의 성격으로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에버하르드 웨버가 불행하게도 뇌졸중으로 연주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동안 그룹의 멤버로 계속 활동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러한 멤버의 변화는 그룹의 사운드에 변화를 가져왔다. 즉, 얀 가바렉이 설정한 이미지의 구현을 위해 멤버들이 하나가 되어 달려가는 것에서 개개인의 연주적 개성을 적극 드러내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공연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2004년 내한 공연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연주자의 자율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물론 지난 10년간 많은 감상자들이 기다렸을 얀 가바렉의 냉랭한 색소폰 연주가 중심이 된 회화적 사운드를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룹을 대표하는 ‘Twelve Moons’, ‘The Tall Tear Trees’, ‘There Were Swallows’같은 곡은 여전히 감상자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꾸게 한다. 또한 노르웨이의 유명 작곡가 하랄드 새베루드의 곡 ‘Rondo Amoroso’는 얀 가바렉 특유의 목가적 감성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네 연주자의 (뜨겁기까지 한) 인터플레이야말로 이번 앨범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특히 마뉘 카쉐는 그로 인해 사운드의 변화가 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얀 가바렉만큼이나 강한 존재감으로 사운드를 지배한다.
한편 멤버의 변화는 레퍼토리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그룹의 앨범 수록 곡들 외에 얀 가바렉과 함께했었던 인도 바이올린 연주자 샹카르의 곡 ‘Paper Nuit’, 밀튼 나시멘토의 ‘Milagre Dos Peixes’그리고 다른 멤버들의 곡들도 연주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얀 가바렉이 새롭게 쓴 곡도 다섯 곡이나 연주되었다.
이 앨범은 결국 공연 실황인 동시에 얀 가바렉 그룹의 새로운 변화를 담고 있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룹의 새로운 시기를 알리는 앨범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10년 만의 새 앨범으로 이 첫 번째 라이브 앨범이 발매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