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_L_B는 드럼 연주자 피터 어스카인과 베트남계 프랑스 기타 연주자 누이엔 레 그리고 프랑스 베이스 연주자 미셀 베니타로 구성된 트리오다. (트리오의 이름은 이들 이름의 앞 글자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국적과 음악적 성향 등에 있어 이 트리오의 출현은 다소 뜻밖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90년대 다양한 만남과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유럽의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 만나 공연을 종종 함께 했던 사이였다. 그 결과 이들의 첫 번째 앨범 <E_L_B>(ACT 2001)은 탄탄한 호흡과 신선한 사운드로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앨범 발매 이후 간간히 유럽의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누이엔 레의 건강과 세 연주자의 계약문제, 독자적인 솔로 활동으로 인해 이 트리오의 음악을 다시 듣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 역시 E_L_B는 그저 한 번으로 끝나는 프로젝트 트리오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세 연주자가 약 7년의 시간 만에 두 번째 앨범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앨범을 들어보면 7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비단 세 연주자의 호흡 때문만은 아니다. 모처럼 만나 함께 연주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차원을 넘어 한층 진일보한 사운드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즉,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은 보이지 않았지만 세 연주자가 꾸준히 트리오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음악적 모색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사운드는 무엇보다 프랑스의 색소폰 연주자 스테판 기욤을 게스트로 불러 사운드를 보다 부드럽고 색채감 있게 만들었다는 것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리고 이 색소폰의 참여로 인해 세 연주자가 작곡단계부터 공평하게 참여한 트리오 임에도 지미 헨드릭스적인 우주적 질감을 지닌 누이엔 레의 기타가 중심이 된 듯했던 인상이 다소 완화되었다.
한편 일종의 슈퍼 트리오로서의 성격을 지녔음에도 세 연주자는 기교보다는 트리오의 차분한 조화에 보다 더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솔로 연주의 즐거움을 이들이 포기했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 앨범을 듣게 되면 미묘한 피치 조절과 이펙트의 사용으로 몽상적인 느낌을 주는 기타와 부드러움과 탄력을 함께 지닌 베이스, 절제된 리듬으로 사운드의 균형을 유지하는 드럼 연주가 주는 개별적 즐거움 또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솔로에 다른 둘이 최대한 자기 연주를 맞춰가는 연주야 말로 이 트리오 사운드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렇기에 드문드문 존재를 드러내는 트리오임에도 그 정체성만큼은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